어릴 적 할머니 손맛이 그리워지는 날, 문득 시골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훌쩍 떠난 고령. 그곳에서 나는 잊지 못할 갈치 맛집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경도식당’. 애들아빠의 적극 추천으로 방문하게 된 이곳은,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낡은 듯 정겨운 외관은 마치 오랜 친구 집에 놀러 온 듯한 편안함을 선사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테이블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했고,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벽 한쪽에는 메뉴판이 붙어 있었는데, 갈치정식, 갈치조림, 갈치탕 등 다양한 갈치 요리가 눈에 띄었다. 갈치 전문점다운 면모에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메뉴판에는 갈치의 원산지가 세네갈이라고 솔직하게 적혀 있었다. 순간, ‘제주 갈치가 아닌데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어떤 맛일지 궁금한데?’라는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갈치정식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자, 상다리가 휘어질 듯한 밑반찬들이 쉴 새 없이 등장했다. 14가지나 되는 반찬들은 하나하나 정성이 가득 느껴졌다. 젓가락을 어디에 먼저 둬야 할지 고민될 정도로 푸짐한 인심에 감탄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잡채, 매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김치,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콩자반 등 다채로운 반찬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밥반찬이었다. 마치 할머니가 차려주신 듯한 푸근한 밥상에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인 요리, 갈치구이와 갈치탕이 등장했다. 큼지막한 갈치 토막은 마치 손바닥만 한 크기를 자랑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갈치구이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뜨끈한 갈치탕은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향을 풍겼다.
먼저 갈치구이 한 점을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갈치구이는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짭짤한 간이 배어 있어 밥 없이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세네갈산 갈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선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평소 제주 갈치 맛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번에는 갈치탕을 맛볼 차례.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갈치탕은 보기만 해도 속이 풀리는 듯했다. 국물 한 숟갈을 떠서 입에 넣으니,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온몸을 감쌌다. 두툼한 갈치 살은 부드럽게 씹혔고, 탕 속에 들어간 두부와 채소들은 국물 맛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칼칼하면서도 깊은 국물 맛은 텁텁함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더욱 만족스러웠다.
경도식당에서는 밥도 특별하게 제공된다. 작은 압력솥에 갓 지은 밥은 윤기가 흐르고 찰기가 넘쳤다. 밥을 그릇에 덜어 먹고 남은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숭늉은 입가심으로 최고였다. 구수한 숭늉은 소화도 잘 되게 해주고,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역할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벽에 붙어있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1인 1메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처음에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푸짐한 양과 맛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손님은 세네갈산 갈치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손님은 직원의 친절함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푸짐한 인심과 맛있는 음식 덕분에 그런 사소한 부분들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경도식당은 점심시간에만 운영하고 재료가 소진되면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11시 40분쯤 도착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 가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으니, 서둘러 가는 것이 좋다. 식당 앞에는 7~8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점심시간에는 주차 공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
식당 근처에는 합천호가 있어 식사 후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합천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나는 식사 후 합천호반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는데, 탁 트인 호수와 주변 경관이 정말 아름다웠다.
경도식당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한 끼 식사를 넘어, 잊고 지냈던 고향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푸짐한 음식들은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 주었고, 넉넉한 인심은 마음까지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다. 고령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경도식당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또 어떤 새로운 맛과 정을 느끼게 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