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날이었다. 앙상한 겨울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차가웠지만, 마음 한구석은 따뜻한 국물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있었다. 목적지는 올림픽공원 근처, 맛집으로 소문난 청와옥 본점. 서울 3대 순대국이라는 명성을 익히 들어왔지만, 긴 웨이팅 때문에 망설였던 곳이었다. 오늘은 큰맘 먹고, 그 기다림마저 음미하리라 다짐하며 나섰다.
도착하니 과연, 명성대로였다. 고풍스러운 한옥 기와를 얹은 건물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무로 멋스럽게 지어진 ‘청와옥’이라는 간판은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듯했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을 정독하며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순대국은 당연히 시켜야 하고, 편백찜도 놓칠 수 없지. 오징어 숯불구이의 매콤한 향도 코를 자극하는 듯했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고, 한옥의 멋을 살린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나무 테이블과 기와 장식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테이블 간 간격도 넉넉해서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흘러나오는 은은한 국악풍의 K팝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식사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따뜻한 물수건과 함께 메뉴판이 나왔다. 고민 끝에 편백정식과 오징어 숯불구이, 그리고 육회를 주문했다. 잠시 후, 정갈하게 차려진 밑반찬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깍두기와 무생채는 붉은 빛깔이 보기 좋았고, 젓갈과 새우젓은 순대국에 깊은 맛을 더해줄 것 같았다. 테이블 한켠에 놓인 수저 받침대마저 섬세한 전통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쓴 세심함이 느껴졌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대국이 나왔다. 뚝배기 안에서 뽀얀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순대 특유의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국물을 한 숟갈 떠 맛보니, 깊고 깔끔한 맛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약재를 넣고 8시간 이상 끓였다는 국물은 정말 깊고 진했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없고, 깔끔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마치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끓인 사골 육수처럼 깊은 맛이었다.
순대국 안에는 순대와 다양한 부속 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다. 순대는 찹쌀순대였는데, 겉은 쫄깃하고 속은 촉촉했다. 특히, 순대 특유의 텁텁함이 없어 좋았다. 돼지 부속 고기 역시 신선하고 쫄깃했다. 잡내 없이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나는 순대국에 다진 마늘과 고추, 부추를 듬뿍 넣고 다대기를 살짝 풀어 먹었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듯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이, 제대로 몸보신하는 기분이었다.
이어서 편백정식이 나왔다. 편백나무 찜기에 담겨 나온 순대와 수육, 머릿고기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편백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져,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숙주나물 위에 올려진 순대와 수육은 기름기는 쏙 빠지고 담백함은 살아 있었다. 쫄깃한 순대와 야들야들한 수육을 함께 먹으니, 입안에서 풍미가 폭발하는 듯했다. 특히, 함께 제공된 특제 소스에 찍어 먹으니, 맛이 한층 더 깊어졌다. 톡 쏘는 겨자 소스와 매콤한 고추장 소스는 순대와 수육의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감칠맛을 더했다.
오징어 숯불구이는 매콤한 양념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숯불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어, 더욱 식욕을 돋우었다. 오징어는 질기지 않고 부드러웠으며, 매콤달콤한 양념이 밥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나는 오징어 숯불구이를 밥에 얹어 쓱쓱 비벼 먹었다. 매콤한 양념과 숯불 향이 어우러져, 정말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특히, 오징어 숯불구이에는 깻잎이 함께 제공되는데, 깻잎에 싸서 먹으니 향긋함이 더해져 더욱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육회가 나왔다. 신선한 육회는 붉은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노른자를 톡 터뜨려 육회와 함께 비벼 먹으니,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육회는 부드럽고 쫄깃했으며, 참기름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특히, 청와옥의 육회는 잘게 다져서 나오는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 깊게 느껴졌다. 육회를 김에 싸서 먹으니, 색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나니, 정말 배가 불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맛있었던 음식들을 다시 한번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따뜻한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산대 옆에는 갓 도정한 쌀이 쌓여 있었다. 청와옥은 쌀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청와옥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한 끼 식사를 넘어, 하나의 깊은 풍경이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미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 정갈하고 푸짐한 음식,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특히, 순대국은 내가 먹어본 순대국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지, 왜 블루리본 맛집인지 알 수 있었다.
다음에 또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가게 문을 나섰다.

차가운 바람이 여전히 불고 있었지만, 마음은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청와옥에서 맛본 순대국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추억과 감동을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음에 부모님을 모시고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 그땐 편백정식에 영양솥밥을 추가해서, 더욱 푸짐하게 즐겨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