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를 뚫고 찾아간 평촌, 잊을 수 없는 토종돼지 돈가츠 맛집

평촌역에서 내린 것은 처음이었다. 범계역 근처는 몇 번 가봤지만, 3월의 마지막 주말, 낯선 도시 평촌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먼 길을 달려온 이유는 오직 하나, 잃어버린 토종돼지를 복원했다는 송학농장의 귀한 돼지로 만든 돈가츠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이런 특별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오래된 아파트 상가 지하. 낡은 건물에 자리 잡은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솔직히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간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아 ‘이런 곳에 정말 맛집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의심은 사라졌다. 외부의 낡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세련되고 아늑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연인들의 속삭임이 정겹게 들려왔다. 혼자 온 손님도 몇몇 눈에 띄었다.

돈가츠 플레이팅
정갈한 플레이팅이 돈가츠의 맛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메뉴를 펼치자, 다양한 돼지 품종과 부위의 돈가츠가 눈에 들어왔다. 버크셔K, 우리흑돈, 퀸즈포크, 순종 듀록, 토종돼지x듀록F1, 지레흑돈… 6가지 품종의 특상등심을 맛볼 수 있다니, 그야말로 돈가츠 오마카세였다. 나는 토종돼지 특상등심과 안심 버크셔K를 주문했다. 가격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맛에 대한 기대감은 그 이상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낡은 상가 지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테리어가 훌륭했다. 은은한 조명과 차분한 분위기가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돈가츠를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소금, 돈가츠 소스, 와사비, 트러플 오일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완두콩으로 만든 콜드 스프가 나왔다. 옅은 초록빛을 띠는 스프는 마치 비지와 비슷한 맛이 느껴졌지만, 쿰쿰한 향 없이 향긋하고 깔끔했다.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스프는, 앞으로 펼쳐질 미식 경험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완두콩 스프
식전, 입맛을 돋우는 완두콩 스프의 섬세한 맛.

드디어 기다리던 돈가츠가 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튀김옷을 입은 돈가츠의 모습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토종돼지 특상등심은 흑돼지 특유의 두툼한 지방층이 겹겹이 쌓여 있어, 보기만 해도 식욕을 자극했다. 젓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보니, 튀김옷이 파사삭 부서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망설임 없이 돈가츠 한 점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첫 입에 느껴지는 것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식감의 조화였다. 튀김옷은 기름지지 않고 담백했으며, 돼지고기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특히 토종돼지 특상등심의 지방은, 단순히 느끼한 기름이 아니라, 부드럽고 녹진한 식감과 함께 진하고 고소하면서도 감칠맛이 느껴지는 다채로운 풍미를 선사했다.

소스와 트러플 오일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처음에는 오롯이 돈가츠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어 아무것도 찍지 않고 먹었다. 그러다 중간쯤 소금을 살짝 찍어 먹으니, 돈가츠의 풍미가 더욱 깊어지는 듯했다. 마지막에는 겨자를 올려 먹으니, 느끼함은 사라지고 깔끔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토종돼지 돈가츠 단면
저온 조리 방식으로 육즙을 가득 머금은 토종돼지 돈가츠의 단면.

안심 버크셔K는 토종돼지 특상등심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것은 동일했지만, 육질이 훨씬 부드러웠다. 마치 잘 만든 닭가슴살처럼, 젓가락으로도 쉽게 잘릴 정도였다. 입안에 넣으니, 돼지 특유의 풍미와 함께 버터 향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돈가츠와 함께 나온 밑반찬들도 훌륭했다. 특히 우엉 절임은,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돈지루 또한, 돼지 육수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훌륭한 입가심이었다. 밥과 양배추는, 셰프의 칼솜씨가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썰어져 나왔다. 폰즈에 은은하게 퍼지는 시소 향, 겨자에 들어간 간 무의 조화는, 이제껏 가본 돈가츠 집 중 디테일 면에서 단연 최고였다. 마치 셰프가 ‘변태’인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아쉬운 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기 공간이 다소 추웠고, 테이블 바닥이 약간 끈적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또, 내가 방문했던 날에는 생맥주 기계가 고장 나서 맛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은, 돈가츠의 훌륭한 맛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이었다.

한상차림
돈가츠와 함께 정갈하게 차려진 한 상.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왕복 세 시간, 4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평촌까지 온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훌륭한 돈가츠를 맛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평소 돈가츠 부위 중 상등심을 좋아하거나, 고소한 지방 부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곳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평촌에서 맛본 토종돼지 돈가츠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앞으로 다른 곳에서는 이런 식감과 맛, 향의 스펙트럼을 경험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다음에는 꼭 사진을 찍어서, 이 감동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다.

돈가츠 한 점
입 안 가득 퍼지는 풍미, 잊을 수 없는 맛.

돌아오는 길, 눈보라는 잦아들고 있었다. 평촌역 앞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왠지 모르게 맑고 깨끗해 보였다. 오늘 맛본 토종돼지 돈가츠처럼, 잃어버린 맛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다음에 슬플 때, 기분 좋을 때,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 그 때는, 망원동 감성의 돈가츠와 함께 생맥주 한 잔을 꼭 즐겨봐야지.

양이 조금 적을 수 있으니, 밥을 리필해서 배를 채우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방문 전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평일에는 괜찮지만, 주말에는 웨이팅이 꽤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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