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떠났던 강원도 단풍 여행. 붉게 물든 산자락의 향연은 눈을 즐겁게 했지만, 꼬르륵거리는 배꼽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저녁 식사를 위해 잠시 횡성에 들렀다. 수많은 한우 전문점들 사이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곳은 횡성군청 바로 옆에 자리한, 언뜻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한 고깃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넓고 깔끔한 홀이 펼쳐졌다. 테이블 사이 간격도 넉넉해서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면에 보이는 정육 코너에는 마블링이 섬세하게 새겨진 한우들이 저온 숙성고 안에서 숙성되고 있었다. 마치 보석이라도 되는 듯 정갈하게 진열된 모습에서, 이 집의 한우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천장에는 커다란 환풍 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테이블마다 설치된 덕트와 연결되어 연기를 순식간에 빨아들일 듯했다.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 아래, 숯불구이의 향긋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입안에 침이 고였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니, 역시나 한우가 주력 메뉴였다. 다양한 부위별로 준비되어 있었는데, 가격도 생각보다 합리적이었다. 횡성한우를 이 가격에 맛볼 수 있다니,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모듬 한 접시와 육회를 주문했다. 밑반찬은 1인당 4천원의 상차림 비용이 발생하지만, 훌륭한 퀄리티를 생각하면 아깝지 않았다. 특히 2천원을 추가하면 맛볼 수 있는 된장찌개는 꼭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문 후, 곧바로 참숯이 들어왔다. 숯불 위로 은빛 석쇠가 놓이자, 묘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이글거리는 숯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캠프파이어를 하는 듯한 설렘마저 느껴졌다. 곧이어 밑반찬들이 차려졌다. 샐러드, 겉절이, 쌈 채소 등 하나하나 정갈하고 신선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슴슴하게 무쳐낸 나물이었는데,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육회였다. 붉은 빛깔이 선명한 육회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잘게 썰린 육회 위에는 쪽파와 깨가 넉넉하게 뿌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채 썬 배가 깔려 있었다. 젓가락으로 살살 비벼 한 입 맛보니,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신선한 육회의 풍미와 쪽파의 향긋함, 배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냈다. 참기름의 고소함까지 더해지니,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우 모듬이 나왔다. 선홍빛 살결에 섬세하게 박힌 마블링은,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 등심, 안심, 채끝 등 다양한 부위가 골고루 담겨 있었는데, 부위마다 다른 매력을 뽐내는 듯했다. 망설일 틈도 없이, 가장 먼저 등심을 석쇠 위에 올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숯불의 화력 덕분에, 겉은 순식간에 노릇하게 익고, 안은 촉촉한 육즙을 머금은 상태로 구워졌다.

잘 익은 등심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풍부한 육즙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고, 부드러운 식감은 혀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횡성한우 특유의 깊은 풍미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특별함이었다.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니, 고기의 풍미가 더욱 살아나는 듯했다. 쌈 채소에 싸 먹어도 맛있었지만, 역시 한우는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았다.

등심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안심과 채끝도 굽기 시작했다. 안심은 등심보다 더욱 부드러웠고, 채끝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육즙이 풍부한 버섯도 함께 구워 먹으니, 입안이 더욱 즐거워졌다. 중간중간 된장찌개를 떠먹으니, 느끼함도 싹 가시는 듯했다. 된장찌개는 깊고 구수한 맛이 났는데, 두부와 야채도 듬뿍 들어 있어 만족스러웠다.

고기를 다 먹고 나니, 시원한 냉면이 간절해졌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중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둘 다 주문했다. 놋그릇에 담겨 나온 냉면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를 들이켜니, 속까지 시원해지는 듯했다. 쫄깃한 면발은 씹는 재미를 더했고, 매콤달콤한 비빔냉면은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후식으로 나온 따뜻한 숭늉은,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주는 역할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니, 어느덧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배부른 배를 두드리며, 횡성에서의 짧지만 강렬했던 미식 경험을 되새겼다. 횡성한우의 풍미는 물론, 친절한 서비스와 넉넉한 인심까지 느낄 수 있었던 곳. 횡성 지역 맛집을 찾는다면,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곳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붉게 물든 단풍잎처럼 강렬했던 횡성한우의 여운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았다. 다음에 또 횡성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다시 들러 횡성 한우를 맛보리라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