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 골목을 누비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낡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부산 대연역 인근, 허름한 건물 사이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산박”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관은, 오히려 묘한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오늘 나는 이곳에서 잊지 못할 미식 경험을 하게 될 것을 예감했다.
문을 열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래된 노포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천장에 매달린 낡은 환풍기들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삐걱거렸지만, 묘하게도 그 소음조차 편안하게 느껴졌다. 테이블 곳곳에서는 이미 저녁 식사를 즐기는 손님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오랜 단골집에 온 듯, 어색함 없이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펼쳐 들자, 안거미와 안창살이라는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집의 대표 메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소고기의 깊은 풍미를 느껴보고 싶어졌다. 잠시 고민 끝에, 소고기를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자, 직원분께서 커다란 도마와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입구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갓 썰어낸 신선한 고기를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잠시 후, 밑반찬들이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파릇한 파채는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새콤달콤한 양파절임은 느끼함을 잡아줄 것 같았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어린 배추 김치였다. 겉절이처럼 풋풋한 느낌의 김치는, 묘하게도 어머니가 어릴 적 해주시던 김치 맛과 닮아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고기가 등장했다. 쟁반 위에는 붉은빛의 소고기와 함께, 큼지막하게 썰린 양파와 새하얀 새송이버섯이 함께 놓여 있었다, . 선명한 마블링은 신선함을 증명하는 듯했다. 숯불이 들어오고, 불판이 달궈지기 시작하자,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소고기를 불판 위에 올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붉은색이었던 고기가 점점 갈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육즙이 표면 위로 맺히기 시작할 때쯤, 고기를 뒤집었다.
잘 익은 소고기 한 점을 집어, 조심스럽게 입 안으로 가져갔다. 혀끝에 닿는 순간,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풍부한 육즙이 입 안 가득 퍼져 나갔다. 진하고 깊은 풍미는, 내가 지금까지 먹어왔던 소고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니, 소고기 본연의 맛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파채와 함께 먹으니, 느끼함은 사라지고 깔끔함만 남았다. 쌈 채소에 싸서 먹으니, 신선한 채소의 향긋함이 소고기의 풍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었다. 정말 쉴 새 없이 먹었던 것 같다.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익은 고기는 재빨리 입 속으로 넣고, 새로운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렸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오직 젓가락질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고기를 어느 정도 먹고 나서, 삼겹살도 맛보기로 했다. 그런데, 삼겹살의 비주얼이 조금 독특했다. 일반적인 삼겹살처럼 균일한 모양이 아니라, 마치 막 썰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삼겹살을 불판 위에 올리자, 소고기와는 또 다른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니, 다시금 식욕이 솟아올랐다. 잘 익은 삼겹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음… 솔직히 말하면, 삼겹살 자체는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얇은 삼겹살 특유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함께 나오는 파절임이나 김치와 함께 먹으니, 나름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배가 불렀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된장찌개를 시켜서 밥과 함께 먹기로 했다. 그런데, 된장찌개가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처럼 묽은 상태로 나왔다. 음… 된장찌개는 조금 아쉬웠다. 깊고 진한 맛을 기대했지만, 밍밍한 느낌이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면서, 나는 “양산박”이 왜 오랫동안 사랑받는 맛집인지 알 수 있었다. 화려하거나 세련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정겨운 분위기와 신선하고 맛있는 고기, 그리고 푸짐한 인심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특히 소고기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다음에는 꼭 안거미와 안창살을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양산박”에서의 경험을 곱씹어 보았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을 넘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정겨운 분위기를 느끼고, 푸근한 인심을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부산 대연동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양산박”에 들러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맛집의 의미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