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왠지 모르게 평양냉면이 간절하게 땡기는 날이었다. 혼자서도 부담 없이, 제대로 된 평양냉면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 종로3가, 탑골공원 근처를 배회했다. 사실 이 동네는 어르신들의 성지 같은 곳이라 혼밥은 늘 익숙하지만, 왠지 모르게 젊은 사람들만 북적이는 곳은 혼자 들어가기 망설여질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용기를 내어, 좁은 골목길 사이에 숨겨진 노포, ‘유진식당’으로 향했다. 오늘도 혼밥 성공!
낙원상가 옆, 탑골공원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정말이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간판에는 ‘유진식당’이라고 정갈하게 쓰여 있었다. 주변은 온통 오래된 국밥집들이 즐비했지만, 유독 이 집 앞에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역시, 맛집은 맛집인가 보다. 밖에서부터 풍겨오는 녹두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발길을 더욱 잡아끌었다. 기름에 지글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면서, ‘아, 여기는 진짜다’라는 느낌이 왔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작았다. 테이블이 겨우 5~6개 정도?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하는 구조였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정겹게 느껴졌다. 혼자 온 나를 보시더니, 이모님께서 카운터석으로 안내해주셨다. 벽을 보고 나란히 앉는 자리였는데, 혼밥하기에는 오히려 딱 좋은 자리였다. 메뉴판을 보니 평양냉면 가격이 정말 착했다. 요즘 평양냉면 한 그릇에 15,000원은 훌쩍 넘는데, 여기는 만 원 초반대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니! 게다가 설렁탕은 5천 원이라는 믿을 수 없는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평양냉면과 함께 녹두지짐을 시켜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오늘은 오롯이 평양냉면 맛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음에는 꼭 녹두지짐에 막걸리 한 잔 기울여봐야지.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평양냉면이 나왔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온 냉면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뽀얀 육수 위에 가지런히 놓인 메밀면, 그리고 그 위에 큼지막하게 썰린 수육 두 점과 삶은 계란 반쪽, 오이, 무 절임이 올라가 있었다. 사진에서 보던 딱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얼른 젓가락을 들고 육수부터 맛봤다.

첫 맛은 ‘깔끔하다’였다. 슴슴하면서도 은은하게 퍼지는 육향이 정말 좋았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딱 내가 원하던 스타일이었다. 솔직히 평양냉면 초보자들은 밍밍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슴슴함 속에 숨겨진 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마치 걸레 빤 물 맛(?)이라는 혹평도 있지만, 제대로 만든 평양냉면은 그런 거친 표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섬세한 맛을 지니고 있다.
면은 직접 뽑은 메밀면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면발에서 은은한 메밀 향이 느껴졌다. 보통 평양냉면 면은 툭툭 끊기는 식감인데, 유진식당 면은 생각보다 쫄깃했다. 쫄깃한 면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더 만족스러웠다. 면과 육수를 함께 먹으니, 입안 가득 퍼지는 풍미가 정말 최고였다. 솔직히 면만 놓고 보면, 완벽한 메밀 함량을 자랑하는 고급 평양냉면 전문점보다는 조금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이 가격에 이런 퀄리티라니,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고명으로 올라간 수육도 꽤 괜찮았다.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웠고, 육향도 은은하게 느껴졌다. 냉면과 함께 먹으니, 슴슴한 맛에 풍성함을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무 절임은 시원하고 아삭해서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했다. 솔직히 평양냉면은 육수, 면, 고명, 이 세 가지 요소의 조화가 중요한데, 유진식당은 그 균형을 잘 맞춘 것 같다.

혼자서 조용히 냉면을 음미하면서,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나, 혼자 오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말없이 냉면을 드시거나,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시는 모습이었다. 나처럼 혼밥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편안한 분위기였다. 가끔씩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혼밥을 해야 할 때면 괜히 눈치가 보이기도 하는데, 유진식당에서는 전혀 그런 걱정 없이 오롯이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면을 흡입하다 보니, 어느새 빈 그릇만 덩그러니 남았다. 육수를 남김없이 들이키니, 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평양냉면은 언제 먹어도 옳다. 특히, 유진식당 평양냉면은 가격까지 착하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이모님께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모님께서도 환한 미소로 “다음에 또 와요!”라고 답해주셨다.
유진식당은 혼밥족에게 정말 ‘혜자’같은 곳이다.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평양냉면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혼자 와도 전혀 눈치 보이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까지 갖추고 있다. 게다가 카운터석도 마련되어 있으니, 혼밥 난이도는 최하라고 할 수 있다. 종로3가, 탑골공원 근처에서 혼밥할 곳을 찾는다면, 유진식당을 강력 추천한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혼자여도 괜찮아!

참고로, 유진식당은 월요일, 화요일은 휴무라고 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테이블당 술 한 병만 주문할 수 있다고 하니,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저녁에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서 방문하면, 좀 더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유진식당에서 나와, 다시 탑골공원 돌담길을 걸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는 것 같다. 다음에는 녹두지짐과 막걸리를 꼭 먹어봐야지. 종로3가 맛집 탐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역명 붙박이 평양냉면집으로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