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그 이름만 들어도 파도 소리와 짭짤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 속초행은 낭만적인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겐 풀리지 않는 숙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최적의 홍게’를 찾아내는 실험이었다. 속초 관광수산시장의 번잡함과 가격에 질려, 나는 미지의 영역, 동명항으로 향했다. 마치 탐험가가 미지의 정글을 탐험하듯, 홍게 맛집을 찾아 나선 것이다.
동명항 입구, 붉은색 간판에 큼지막하게 쓰인 ‘속초홍게’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전국 택배가 가능하다는 문구는 신선도에 대한 자부심처럼 느껴졌다. 가게 앞 수조에는 갓 잡아 올린 듯 싱싱한 홍게들이 가득했다. 투명한 물속에서 붉은 갑옷을 입은 채 꿈틀거리는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루비를 보는 듯했다. 이 녀석들, 과연 내 미각 실험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까?

가격은 마리당 책정되는 시스템이었다. 1만원부터 시작해 크기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는 방식. 마치 생물학 실험에서 표본을 고르듯, 신중하게 홍게를 골랐다. 사장님은 전남 고흥 출신이라는 점이 묘하게 신뢰감을 줬다. 남도의 풍요로운 인심이 홍게 맛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3월 말에 소록도에 기부하러 가신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동해, 넉넉하게 6마리를 주문했다. 사장님은 인심 좋게 2마리를 더 얹어주셨다. 10만원에 홍게 6마리라니, 이 정도면 가성비도 훌륭한 ‘맛집’이라고 부를 만하다.
게딱지 밥은 개당 2천원. 찜 값은 따로 받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불필요한 추가 비용 없이 오롯이 홍게 맛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숙소로 돌아와 본격적인 실험 준비에 돌입했다. 홍게의 붉은 껍질은 키틴과 아스타잔틴 색소의 복합체. 찜통 속에서 가열되면서 아스타잔틴이 단백질과 분리되어 더욱 선명한 붉은색을 띠게 된다. 100℃의 증기가 홍게의 겉과 속을 골고루 익혀, 살 속의 단백질을 응고시키고 글루탐산과 이노신산의 감칠맛을 극대화한다.
뚜껑을 여는 순간, 뜨거운 김과 함께 홍게 특유의 달콤한 향이 코를 찔렀다. 붉게 잘 익은 홍게는 시각적으로도 식욕을 자극했다. 젓가락을 들고, 가장 큰 놈부터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사장님의 능숙한 손질 덕분인지, 껍질은 마치 꽃잎처럼 부드럽게 벗겨졌다. 다리 살을 하나씩 발라 먹는 재미는, 마치 과학자가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는 희열과도 같았다.

입 안 가득 퍼지는 홍게 살의 풍미는,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느껴지는 은은한 단맛은, 단순한 미각 자극을 넘어 뇌를 행복하게 만드는 듯했다. 홍게 살에는 글리신, 알라닌, 글루탐산 등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단맛과 감칠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특히 글루탐산은 혀의 미뢰를 자극하여, ‘우마미(Umami)’라고 불리는 깊은 풍미를 선사한다.
게딱지에 붙어있는 내장은, 홍게 맛의 정수였다.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은, 마치 잘 숙성된 치즈와도 같았다. 내장에는 DHA, EPA 등의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뇌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게딱지 밥을 비벼 먹으니, 그 풍미는 더욱 깊어졌다. 밥알 하나하나에 홍게 내장의 풍미가 코팅되어,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듯했다.
넷이서 배불리 먹고도 홍게가 남았다. 남은 홍게로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홍게에서 우러나온 키토산 덕분에 면발은 더욱 쫄깃해지고, 국물은 시원하고 칼칼했다. 캡사이신이 TRPV1 수용체를 자극하여 통증과 쾌감을 동시에 유발하는, 그야말로 마성의 라면이었다.
다음 날 아침, 속초 시장을 지나다 우연히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어제 그 맛을 잊지 못해, 아침부터 홍게를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스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속초 시장보다 훨씬 수율이 좋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 바로 쪄서 잘라 먹으니, 입 안이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사장님 부부의 친절함은, 홍게 맛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kg 단위가 아닌 마리당 가격을 매기는 방식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원하는 크기의 홍게를 골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62년 인생 동안 속초를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매번 먹는 것이 고민이었다는 한 방문객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산오징어는 찾아보기 힘들고, 무한리필 홍게집은 텅 빈 껍데기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비싼 대게를 시켜도 맹탕인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번 동명항 ‘속초홍게’ 방문은, 그 모든 불만을 잠재울 만큼 만족스러웠다.
푸짐한 인심에 감동했다는 또 다른 방문객의 후기처럼, 나 역시 그 따뜻함에 감탄했다. 덤으로 주신 홍게 두 마리와 게 뚜껑 볶음밥 세 개, 그리고 군고구마까지. 대포동의 바가지요금과는 정반대의, 훈훈한 정이 느껴졌다. 숙소에서 먹는 홍게는 살이 꽉 차 있었고, 고소하고 달달한 맛은 잊을 수 없었다. 싱싱함이 살아있어 마치 바다로 튀어나갈 듯했다. 드디어 속초 단골집을 찾았다는 기쁨에 벅차올랐다.

수율 좋고 내장까지 다 먹을 수 있었다는 후기처럼, 나 역시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겼다. 관광시장 대게보다 이곳 홍게가 훨씬 낫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동명항 ‘속초홍게’,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정과 맛이 넘치는 속초의 보물 같은 곳이다. 속초 맛집을 찾는 미식가라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필수 코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다음 속초 여행에서도 나는 망설임 없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새로운 맛의 발견이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