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런던에서 유학 시절을 보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뜬금없이 셰퍼드 파이가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런던의 향수를 느끼고 싶다나. 한국에서 제대로 된 영국 음식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곧바로 ‘차만다’라는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송리단길에 위치한 이곳은, 꽤나 진지하게 영국 가정식을 선보이는 곳 같았다.
‘차만다’… 독특한 이름이다. 마치 주문을 외우는 듯한 어감. 가게에 들어서자, 아늑하면서도 살짝 어두운 분위기가 나를 감쌌다. 테이블은 대략 5개 정도. 벽에는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촛불 모양의 조명이 놓여 있었다. 1/f 노이즈를 발생시키는 듯한 불빛은 시각적인 편안함을 제공하며, 미각을 더욱 섬세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았다. 마치 미슐랭 레스토랑의 실험실에 온 기분이랄까.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탐색했다. 셰퍼드 파이는 당연히 주문해야 했고, 비프 웰링턴, 피쉬 앤 칩스까지,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들을 하나씩 섭렵해 보기로 했다. 느끼함을 잡아줄 샐러드도 하나 추가했다. 마치 ‘푸드 챌린지’에 참가한 과학자처럼, 나는 분석적인 시선으로 메뉴들을 스캔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샐러드였다. 신선한 채소들이 아삭하게 씹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샐러드에 사용된 드레싱은 단순한 오일 & 비네거가 아닌, 뭔가 특별한 풍미가 느껴졌다. 아마도 발사믹 글레이즈에 허브를 첨가한 듯했다. 단순한 샐러드조차, 차만다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듯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셰퍼드 파이가 등장했다. 뜨겁게 달궈진 접시 위에서, 셰퍼드 파이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김을 내뿜고 있었다. 셰퍼드 파이 위에는 영국 국기가 꽂혀 있었다. 마치 “내가 바로 정통 영국 음식이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셰퍼드 파이는 중세 시대 영국 목동들이 양을 치면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본래는 양고기를 사용하지만, 차만다에서는 소고기 등심을 사용한다고. 그리고 매쉬드 포테이토 대신, 감자전을 사용하여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했다.
나는 셰퍼드 파이의 윗부분, 사워크림과 치즈, 그리고 감자전을 조심스럽게 분리해 냈다. 그리고 그 아래 숨어있는 소고기 등심과 토마토 소스를 탐색했다.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는 심정으로, 셰퍼드 파이의 층위를 분석했다.
가장 먼저 사워크림을 맛보았다. 혀끝에 닿는 순간, 미세한 산미가 느껴졌다. 사워크림은 단독으로 먹을 때는 그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다른 재료들과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제 역할을 발휘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단원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음으로 감자전을 맛보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감자전이었다. 감자의 전분 성분이 180도 이상의 고온에서 덱스트린으로 변화하면서, 겉면은 황금빛으로 변하고 바삭한 식감을 갖게 된다. 이른바 ‘마이야르 반응’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셰퍼드 파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고기 등심과 토마토 소스를 맛볼 차례. 소고기 등심은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었고, 토마토 소스는 신선한 토마토의 풍미와 허브의 향긋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소고기 등심의 아미노산과 토마토 소스의 유기산이 만나, 환상적인 감칠맛을 만들어냈다.
나는 사워크림, 감자전, 소고기 등심, 토마토 소스를 한꺼번에 맛보았다. 입안에서 다채로운 맛의 향연이 펼쳐졌다. 사워크림의 산미, 감자전의 고소함, 소고기 등심의 풍미, 토마토 소스의 감칠맛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마치 잘 조율된 악기처럼, 각자의 개성을 뽐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듯했다. 실험 결과, 이 조합은 완벽에 가까웠다.

다음으로 맛본 것은 비프 웰링턴이었다. 소고기 안심을 페이스트리로 감싸 구워낸, 고급스러운 영국 요리의 대명사. 비프 웰링턴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야 한다. 페이스트리의 버터 풍미와 소고기 안심의 육즙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차만다의 비프 웰링턴은, 겉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160도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페이스트리 표면에 갈색 크러스트가 형성된 것이다. 나이프로 조심스럽게 비프 웰링턴을 잘라보니, 안에는 촉촉한 소고기 안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빛깔을 띠는 소고기 안심은, 완벽한 레어 상태였다.
비프 웰링턴을 한 입 베어 물자, 페이스트리의 바삭함과 소고기 안심의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페이스트리의 버터 풍미가 입안 가득 퍼져나갔고, 소고기 안심의 육즙이 혀를 감쌌다. 차만다의 비프 웰링턴은, 훌륭한 맛과 식감을 자랑했다.

마지막으로 맛본 것은 피쉬 앤 칩스였다. 튀김옷은 바삭하고, 생선살은 촉촉해야 한다. 그리고 눅눅해지지 않도록, 기름을 완벽하게 제거해야 한다. 차만다의 피쉬 앤 칩스는, 갓 튀겨져 나와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었다. 튀김옷은 황금빛이었고, 생선살은 하얀색이었다.
피쉬 앤 칩스를 한 입 베어 물자, 튀김옷의 바삭함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튀김옷은 과도하게 두껍지 않았고, 적당한 두께를 유지하고 있었다. 생선살은 촉촉했고, 비린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차만다에서는 신선한 대구를 사용하여 피쉬 앤 칩스를 만든다고 한다.
피쉬 앤 칩스와 함께 제공된 타르타르 소스도 훌륭했다. 마요네즈, 다진 양파, 피클, 레몬즙 등을 사용하여 만든 타르타르 소스는, 피쉬 앤 칩스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상큼함을 더해 주었다. 나는 피쉬 앤 칩스를 타르타르 소스에 듬뿍 찍어 먹었다.
차만다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맥주도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셰퍼드 파이, 비프 웰링턴, 피쉬 앤 칩스와 잘 어울리는 테넌츠 위스키 오크 에이지드 맥주를 주문했다. 위스키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테넌츠 맥주는, 기름진 음식들의 느끼함을 깔끔하게 씻어주는 역할을 했다.

차만다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서 이렇게 훌륭한 영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차만다는, 단순한 음식점이 아닌, 영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탄생한 공간이었다.
가게를 나서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차만다의 이름을 되뇌었다. ‘차만다’… 마치 주문을 외우는 듯한 어감. 나는 조만간 다시 차만다를 방문하여, 다른 메뉴들도 섭렵해 볼 생각이다. 그땐 스카치 에그 리소토를 꼭 먹어봐야지.
돌아오는 길, 친구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런던에서의 추억을 되살려줘서 고맙다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가 맛본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야. 그것은 런던의 향수이자, 차만다의 열정, 그리고 우리의 우정이지.”
만약 당신이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차만다를 방문해 보길 바란다. 그곳에서, 당신은 뜻밖의 미식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의 인생을 바꿀 만한 영감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