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요리에 대한 나의 애정은 단순한 미식 취향을 넘어선다. 각 재료가 가진 고유의 풍미, 조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맛의 향연은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과학 실험과도 같다. 특히 기대를 품고 방문한 보은의 작은 식당, 한월당은 베트남 현지의 맛을 그대로 재현해 낸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속리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 나는 과연 어떤 ‘실험 결과’를 얻게 될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튀김 기름과 향신료가 뒤섞인,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향이었다. 마치 잘 통제되지 않은 실험실에 들어선 기분이랄까. 후각 수용체가 빠르게 적응하며, 곧이어 느껴지는 것은 향긋한 허브 향이었다. 에서 보듯, 간판에는 정갈한 한글로 ‘한월당’이라 적혀 있었지만, 문 옆에는 베트남 국기와 함께 베트남어 상호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이질적인 요소들의 조합은, 앞으로 펼쳐질 미식 경험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에서 볼 수 있듯이, 내부는 소박한 동네 식당 분위기였다. 화려한 장식은 없었지만, 테이블마다 놓인 스테인리스 물통과 컵, 그리고 곳곳에 걸린 베트남 관련 소품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더했다. 벽에 붙은 메뉴판을 살펴보니, 쌀국수, 반쎄오, 분짜 등 베트남의 대표적인 요리들이 눈에 띄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는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라 불리는 반쎄오와 쌀국수를 주문했다. ‘실험’에는 대조군이 필요한 법이니까.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쌀국수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수 위로 얇게 썰린 양파와 파가 듬뿍 올려져 있었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저어 보니, 밑에는 숙주가 가득 깔려 있었다. 국물부터 한 모금 맛보았다. 첫맛은 달콤했다. 아마도 설탕이나 다른 감미료가 첨가된 듯했다. 하지만 곧이어 깊고 진한 육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멸치 액젓(느억맘)을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쌀국수 면은 부드럽고 쫄깃했다. 젓가락으로 집어 올릴 때마다 면발에 육수가 촉촉하게 배어 나왔다. 함께 들어 있는 고기는 부드럽게 씹혔고, 육즙이 풍부하게 터져 나왔다. 쌀국수 한 그릇에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그리고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 균형 있게 함유되어 있었다. 마치 잘 설계된 ‘영양 캡슐’을 먹는 기분이랄까. 와 , 그리고 을 보면, 쌀국수 위에 뿌려진 파와 양파가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더해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쌀국수의 ‘진짜 매력’은 바로 고수였다. 테이블 한쪽에 마련된 고수 바구니에서 싱싱한 고수를 듬뿍 가져와 쌀국수에 넣었다. 쌉싸름하면서도 독특한 향이 쌀국수 전체의 풍미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고수에 들어 있는 ‘리날룰’이라는 성분은 뇌를 자극하여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한다고 한다. 실제로 고수를 넣은 쌀국수를 먹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쎄오가 등장했다. 커다란 접시 위에 펼쳐진 반쎄오는 마치 거대한 크레이프처럼 보였다. 얇고 바삭한 반죽 안에는 숙주, 새우, 돼지고기 등이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겉바속촉’의 정석이었다. 이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 반쎄오의 겉면은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져 있었다. 이는 반죽에 함유된 전분이 고온에서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킨 결과일 것이다.

반쎄오를 먹는 방법은 독특했다. 함께 제공된 라이스페이퍼에 각종 채소와 반쎄오를 넣고 돌돌 말아, 느억맘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다. 라이스페이퍼의 쫀득한 식감, 채소의 신선함, 반쎄오의 고소함, 그리고 느억맘 소스의 짭짤함이 한데 어우러져 입안에서 폭발적인 풍미를 자아냈다. 느억맘 소스에 들어 있는 글루타메이트 성분은 감칠맛을 극대화하여, 뇌를 자극하고 쾌감을 느끼게 한다.
와 을 살펴보면, 반쎄오와 함께 제공되는 다양한 채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상추, 깻잎, 오이 등 신선한 채소들은 반쎄오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아삭한 식감을 더해 주었다. 특히 깻잎의 독특한 향은 반쎄오의 풍미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반쎄오의 양은 엄청났다. 거의 2인분에 가까운 양이었다. 처음에는 ‘이 정도쯤이야’라며 호기롭게 먹기 시작했지만, 먹다 보니 점점 배가 불러왔다. 마지막에는 솔직히 조금 느끼하기도 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젓가락을 놓는 순간, 이 맛있는 음식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주방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베트남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며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네, 정말 맛있었어요! 특히 반쎄오가 최고였어요!”라고 답했다. 아주머니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말했다.
식당을 나서며, 나는 오늘 ‘실험’이 성공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쌀국수는 달콤하면서도 깊은 육향이 인상적이었고, 반쎄오는 겉바속촉의 정석을 보여주는 훌륭한 요리였다. 특히 베트남 아주머니의 손맛이 깃든 반쎄오는,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식당 내부의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냄새가 조금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훌륭한 음식 맛으로 충분히 상쇄될 수 있는 문제였다. 다음에는 분짜와 짜조도 한번 먹어봐야겠다. 그때는 또 어떤 ‘미식 실험’을 하게 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결론적으로, 보은에서 베트남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한월당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맛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속리산 여행 중 뜻밖의 “맛집”을 발견한 기쁨, 이 기분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