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낡은 지도 한 장을 들고 이대 골목길을 헤매었다. 목적지는 오직 하나, 오래전 대만 친구가 추천해 준 작은 훠궈집, ‘사부선생’이었다. 간판은 빛바랬지만, 그 이름만은 묘하게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친구의 이름을 속삭이는 듯한, 그런 끌림이 있었다. 오늘 나는 그 미지의 미각을 찾아, 서울 속 작은 대만으로의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에서 만나는 맛집의 향수, 그 설렘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붉은 홍등이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투박한 나무 외관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인 ‘사부선생’ 간판. 첫인상은 소박했지만, 묘하게 정감이 갔다. 마치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듯한, 그런 묵직함이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테이블 몇 개 놓인 아담한 공간은 이미 저녁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훠궈 끓는 소리가 뒤섞여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축제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자리에 앉자,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훠궈는 1인당 20,000원, 2인 이상 주문 시 15,0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 나는 망설임 없이 훠궈 2인분을 주문했다. 곧이어 테이블 위에는 큼지막한 냄비가 놓였다. 냄비 안에는 붉은 홍탕과 뽀얀 백탕, 두 가지 육수가 담겨 있었다. 마치 음과 양처럼,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는 두 육수의 조화가 기대됐다.

셀프 코너에는 신선한 야채와 고기가 가득했다. 푸릇푸릇한 배추, 청경채, 숙주,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종류도 다양했다. 고기는 소고기와 양고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소고기와 양고기를 듬뿍 담아 냄비로 향했다. 마치 풍요로운 가을 밭을 거니는 듯한, 그런 넉넉함이 느껴졌다. 냉장고 안에는 가지런히 정돈된 야채들이 싱싱함을 뽐내고 있었다. 투명한 아크릴 상자 안에서 빛나는 채소들은 마치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홍탕에는 얼얼한 매운맛을 내는 마라가 듬뿍 들어 있었다. 국물을 한 입 맛보니, 혀끝이 짜릿하게 마비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 강렬한 매운맛은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마치 잊고 있었던 열정을 깨우는 듯한, 그런 자극이 느껴졌다. 백탕은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은은한 향신료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나는 야채와 고기를 듬뿍 넣어 훠궈를 끓였다. 끓일수록 육수는 점점 진해지고, 냄비 안은 풍성한 향기로 가득 찼다. 젓가락으로 건져 올린 소고기는 등촌샤브샤브처럼 부드러웠고, 양고기는 살짝 두툼하니 씹는 맛이 있었다. 홍탕에 푹 익힌 야채는 매콤하면서도 아삭했고, 백탕에 담백하게 익힌 고기는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모습이었다. 젊은 중국인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고향의 맛을 즐기고 있었고, 한국인들은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새로운 맛을 경험하고 있었다. 마치 작은 지구촌처럼, 다양한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홍탕과 백탕을 번갈아 가며, 야채와 고기를 쉴 새 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매운맛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탐험가처럼, 새로운 맛의 조합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어느덧 배는 빵빵하게 불러왔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마치 여행의 마지막 날,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은 그런 아쉬움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국물까지 싹싹 비웠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자,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오늘 나는 단순히 한 끼 식사를 한 것이 아니라, 서울 속 작은 대만으로의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잊지 못할 맛과 추억을 가슴에 담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대만 친구가 그리워졌다. 언젠가 다시 함께 이곳에 와서, 고향의 맛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오늘보다 더 깊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겠지. 이대 지역명 골목 귀퉁이에서 발견한 작은 이대 훠궈집은 단순한 식당을 넘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다음에는 꼭 대만 친구와 함께 와야지. 그땐 내가 좋아하는 맥주도 한 잔 곁들여야겠다. 그때까지 사부선생은 이 자리에서 변함없이, 따뜻한 훠궈를 끓여주기를 바란다. 서울에서 만나는 작은 위로, 사부선생에서의 훠궈는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