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마당 한켠에 솥을 걸어놓고 뽀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던 풍경이 늘 있었지. 그 솥에서 끓여지던 곰탕이며, 닭백숙은 어찌나 맛깔났던지. 도시에서는 쉬이 잊고 살았던 그 정겨운 풍경과 맛을 좇아 부안으로 향했어. 부안에는 왠지 모르게 그런 따스함이 남아있을 것 같았거든.
부안 시내를 조금 벗어나 한적한 길을 따라 차를 달리니, 멀리서부터 연기가 피어오르는 한 곳이 눈에 띄었어. 낡은 시골집처럼 보이는 식당 앞에 다다르니, 큼지막한 간판에 ‘할매 피순대’라고 떡하니 쓰여 있더라고. 아,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지.

주차장이 있는 줄 모르고 길가에 차를 세웠는데, 나중에 보니 식당 바로 옆에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더라. 밤이라 잘 안 보였던 거지. 안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꽤 넓었어. 테이블이 스무 개는 족히 넘어 보였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훅 풍겨오는 돼지 냄새에 살짝 망설였어. ‘잘못 왔나?’ 싶기도 했지만, 이왕 들어온 거 순대국밥을 하나 시켜봤지. 메뉴는 순대국밥 말고도 막창국밥, 돼지국밥 등 다양했는데, 역시 이 집은 피순대가 유명하다니 순대국밥을 먹어봐야겠더라고.
드디어 기다리던 순대국밥이 나왔어. 뽀얀 국물 위로 송송 썰린 파가 얹어져 있고, 그 안에는 순대와 내장이 푸짐하게 들어 있었지. 첫 숟갈을 뜨는 순간, 돼지 냄새는 온데간데없이 깊고 진한 국물 맛이 입안 가득 퍼졌어. 아, 이래서 사람들이 ‘진국’이라고 하는구나 싶었지.

순대국밥 안에 들어있는 피순대를 맛보는 순간, 정말 깜짝 놀랐어. 내가 알던 피순대랑은 차원이 다르더라고. 잡내 하나 없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딱 맞을 거야. 전주에서 유명하다는 피순대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졌어. 괜히 할매 손맛이 아니구나 싶었지.
국밥에 들어있는 내장도 어찌나 푸짐한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더라. 푹 고아낸 덕분인지, 질기지 않고 야들야들한 식감이 일품이었어. 아이들도 참 좋아하겠다 싶었지.
반찬도 빼놓을 수 없지. 특히 푹 익은 신김치와 겉절이는 정말 예술이었어. 어찌나 맛깔나던지, 국밥 한 숟갈에 김치 한 조각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지. 묵은지의 깊은 맛은 국밥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했고, 겉절이의 신선함은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줬어.

사실 피순대를 그리 즐겨 먹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 집에서 맛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 다른 일정 때문에 피순대를 따로 주문하지 못한 게 어찌나 아쉽던지. 다음에는 꼭 피순대 한 접시를 시켜서 제대로 맛봐야겠다고 다짐했지.
식당 밖에는 커다란 가마솥 세 개가 펄펄 끓고 있었어.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어찌나 정겹던지. 저기서 오랜 시간 끓여낸 육수 덕분에 국밥 맛이 그렇게 깊고 진한 거겠지. 가마솥 옆에는 장작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이었어.

벽 한쪽에는 여러 인증서와 상장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생활의 달인’ 명패였어. 역시, 괜히 맛집이라고 소문난 게 아니었구나 싶었지.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 걸 보니, 현지인들에게도 꽤나 유명한 맛집인 것 같았어. 테이블이 입식으로 바뀐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식당 내부는 편안하게 식사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지. 예전에는 좌식 테이블이었나 봐. 어쩐지 더 정겨운 느낌이었을 텐데.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큼지막하게 쌓여있는 뚝배기들을 봤어. 저 많은 뚝배기에 매일같이 뜨끈한 국밥이 담겨 나가겠지. 왠지 모르게 뭉클해지는 기분이었어.

다만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었어. 순대국밥에는 머릿고기가 들어있지 않다는 거였지. 머릿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돼지국밥을 시키는 게 좋겠더라. 그리고 김치 맛이 조금 아쉽다는 평도 있었어. 겉절이는 괜찮았지만, 깍두기는 조금 더 신경 써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피순대의 식감에 대한 호불호도 갈릴 수 있을 것 같아. 찹쌀순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퍽퍽하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퍽퍽함 속에 숨어있는 고소함과 담백함이 좋았어.
어떤 사람들은 돼지 냄새가 너무 심하다고 하던데, 나는 순대국밥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어. 아마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거슬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만큼 돼지 특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나오는 길에 보니, 식당 한켠에 장작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더라. 저 많은 장작을 때서 가마솥을 끓이려면 얼마나 힘드실까. 그래도 변함없는 맛을 위해 묵묵히 장작을 패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했어.

부안에 다시 가게 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집을 다시 찾을 거야. 그때는 꼭 피순대 한 접시를 시켜서, 묵은지에 싸 먹어야지. 그리고 뜨끈한 순대국밥 국물에 밥 한 그릇 말아서, 후루룩 먹고 싶다.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네.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어. 할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사람, 진정한 순대국밥의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부안의 ‘할매 피순대’에 꼭 한번 들러보시길 바라. 분명 후회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