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그중에서도 양양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곳이다.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해변과 설악산의 수려한 경관이 어우러진 이곳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소박한 음식이 끌렸다. 화려하고 세련된 레스토랑보다는,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진솔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부터 벼르던 ‘범부 메밀국수’가 떠올랐다.
전현무계획에 소개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실 방송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곳은 이미 양양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맛집이었다. 25년 9월 초 어느 날,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차를 몰아 범부리 마을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소박한 옛날집이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차량들이 이곳이 제대로 찾아온 맛집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게 앞으로 다가섰다.

푸른색 함석지붕 아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간판이 정겹게 느껴졌다. 가게 앞에는 키 큰 소나무와 아담한 꽃밭이 조성되어 있어,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방문한 듯한 푸근한 인상을 받았다. 활짝 열린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정겹고 소박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테이블 몇 개가 놓인 아담한 공간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음을 짐작게 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훑어봤다. 메밀국수 전문점답게 물, 비빔 메밀국수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수육과 촌두부, 감자전 등 향토적인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비빔 메밀국수를 점찍어두었지만,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 물 메밀국수도 하나 시키고, 수육 반 접시를 추가했다.

잠시 후, 기본 찬들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푹 익은 무김치와 열무김치, 그리고 수육을 위한 새우젓이 전부였지만, 소박한 메밀국수와 곁들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오래된 맛이 느껴지는 잘 익은 무김치는, 슴슴한 메밀국수의 맛을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 메밀국수가 나왔다. 뽀얀 메밀 면 위에 김 가루와 깨가 듬뿍 뿌려져 있었고,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켜보니, 슴슴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메밀 면은 겉보기와는 달리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었다. 알고 보니 100% 순메밀은 아니라고 했다. 면을 입안에 넣고 씹을수록, 은은한 메밀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혹자는 평양냉면 같다고도 평했지만, 내겐 그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김의 향이 메밀 고유의 풍미를 해칠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 입맛에는 오히려 조화롭게 어울렸다.
이어서 나온 비빔 메밀국수는, 보기만 해도 입맛이 다셔지는 매콤한 양념이 듬뿍 올려져 있었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면을 들어 올리니,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한 입 맛보니,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양념이 쫄깃한 메밀 면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비빔 메밀국수에는 해바라기씨와 호박씨 등의 견과류가 들어가 있어, 톡톡 터지는 식감과 고소한 풍미를 더했다.

어떤 사람들은 비빔 양념에 견과류가 들어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신선하고 긍정적인 경험이었다. 슴슴한 물 메밀국수와 매콤달콤한 비빔 메밀국수를 번갈아 먹으니, 입안이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수육은, 겉보기에는 다소 퍽퍽해 보였지만, 실제로 먹어보니 부드러웠다. 돼지 특유의 잡내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적당한 기름기가 촉촉함을 더했다. 다만, 같이 제공된 새우젓은 짠맛이 강해 조금 아쉬웠다.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참기름이나 다진 마늘 등을 살짝 가미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육과 함께 나온 무말랭이는, 꼬들꼬들한 식감과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따뜻한 두부에 무말랭이를 곁들여 먹으면, 훌륭한 술안주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에는 꼭 촌두부를 시켜서 함께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노을 아래, 평화로운 범부리 마을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멀리서 찾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양양 근처에 올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방송 출연 이후, 가격이 다소 인상되었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여전히 착한 가격으로 훌륭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변함없는 장점이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함께 메밀국수와 촌두부를 맛봐야겠다. 그분들도 분명, 이곳의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와 맛에 푹 빠지실 것이 분명하다.
범부 메밀국수는, 화려한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진솔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치 고향집에 온 듯한 푸근함과,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듯한 따뜻한 음식은, 지친 일상에 쉼표를 찍어주는 소중한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양양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범부 메밀국수에 들러 소박한 강원도의 맛을 느껴보길 바란다. 분명,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