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골목길 숨은 보석, 도이칠란드 박에서 맛보는 이국적인 향수 맛집

어릴 적 살던 정릉, 참 오랫동안 잊고 지냈지.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정릉시장을 지나다 보면, 웬 딴 세상이 펼쳐진다. 낡은 이발소 옆, 뜬금없이 나타나는 한옥에서 풍겨져 나오는 햄 굽는 냄새라니.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도이칠란드 박이렸다.

간판에 쓰인 ‘도이칠란드’라는 이름과는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정겨운 한옥 대문이 날 반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옥의 나무 기둥과 서까래 아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더해져 따뜻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독일 어느 작은 마을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온 듯한 기분이야.

따뜻한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트리
한옥과 크리스마스 트리의 조화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눈에 들어오는 건, 큼지막한 잠봉뵈르 샌드위치와 육즙이 좔좔 흐르는 수제 소시지 플래터다. 메뉴판을 보니, 독일식 소시지와 프랑스식 샌드위치를 함께 맛볼 수 있다니, 희한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독일 대표 음식인 소시지를 직접 만들고, 맥주까지 팔고 있으니 ‘도이칠란드’라는 이름을 붙인 게 당연하다 싶다.

고민 끝에, 제일 잘 나간다는 잠봉뵈르와 칼바사 소시지 플래터를 시켰다. 둘이서 먹기에 딱 좋은 조합이라나. 잠봉뵈르는 1만원도 안 되는 가격인데, 크기가 어찌나 큰지 쟁반을 가득 채운다. 두툼한 바게트 빵 사이에 아낌없이 들어간 잠봉햄과 버터!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푸짐한 잠봉뵈르 샌드위치
입이 떡 벌어지는 크기의 잠봉뵈르, 이 가격에 이 양이라니!

빵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제대로 만든 바게트다. 햄은 짜지 않고 담백하고, 버터는 고소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풍미가 정말 환상적이다. 느끼할까 봐 걱정했는데, 웬걸.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셨다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햄에 발라 먹으니, 단짠단짠한 맛이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아이고, 사장님, 이런 꿀조합은 누가 생각해냈대요?

칼바사 소시지는 기본, 치즈, 핫 세 가지 맛 중에서 두 가지를 고를 수 있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나는 기본과 치즈를 선택했다. 소시지를 칼로 슥 가르니, 육즙이 톡 터져 나온다.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살짝 올려 먹으니, 입안에서 축제가 열리는 것 같아.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소시지 맛이, 맥주를 절로 부른다.

육즙 가득한 칼바사 소시지 플래터
소시지를 자르는 순간, 육즙이 팡팡 터져 나온다.

맥주는 코젤 다크 생맥주를 시켰다. 잔 입구에 시나몬 흑설탕을 듬뿍 묻혀주는 센스! 흑맥주의 부드러운 목 넘김과 향긋한 시나몬 향이 어우러져, 정말 꿀맛이다. 달콤쌉싸름한 맛이 소시지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시나몬 흑설탕이 듬뿍 묻은 코젤 다크
코젤 다크 생맥주, 시나몬 흑설탕 덕분에 더욱 달콤하다.

도이칠란드 박에서는 독일 소시지에 프랑스 샌드위치를, 체코 맥주와 함께 즐기는 묘한 조합이 가능하다. 가게 이름은 독일인데, 흘러나오는 음악은 7080 미국 팝이라니, 이보다 더 힙할 수는 없다.

가게는 그리 넓지 않다. 테이블이 몇 개 없어서, 자칫하면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좁은 공간 덕분에 오히려 아늑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가게 앞에 놓인 바 테이블에 앉아,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맥주 한 잔 기울이는 것도 좋겠다.

한옥 천장이 인상적인 내부
한옥의 멋을 그대로 살린 천장이 인상적이다.

나오는 길에, 수제 소시지를 포장했다. 집에 가서 에어프라이어에 살짝 데워 먹으니, 매장에서 먹는 것 못지않게 맛있다. 특히 핫 소시지는 매콤한 맛이 톡 쏘는 게, 아주 내 스타일이다.

도이칠란드 박은 가격도 착하다. 사장님이 취미로 가게를 운영하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맛, 양, 가격, 분위기, 서비스,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정릉에 이런 맛집이 숨어 있었다니, 이제라도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다만, 주차하기가 쪼끔 힘들다는 게 흠이다. 골목길에 위치해 있어서, 차를 가지고 오는 건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 정도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손님이 들고 있는 잠봉뵈르
어디를 가든 시선을 사로잡는 잠봉뵈르의 압도적인 크기.

정릉에 갈 일이 있다면, 도이칠란드 박에 꼭 한번 들러보시라. 후회는 절대 없을 거다. 육즙 가득한 소시지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이면, 세상 시름 다 잊고 행복해질 테니. 옛날 생각도 나고,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다.

야외 테이블에 놓인 소시지 플래터
날씨 좋은 날엔 야외 테이블에서 즐기는 소시지와 맥주!

아, 그리고 사장님, 화장실 청소는 쪼끔만 더 신경 써주시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오늘도 도이칠란드 박 덕분에, 마음까지 풍족해지는 하루였다. 다음에 또 와서, 못 먹어본 메뉴들을 싹 다 섭렵해야지. 정릉 떠나온 지 오래됐지만, 도이칠란드 박 덕분에, 다시 고향에 온 듯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깔끔하게 담겨 나온 잠봉 프로마쥬
잠봉과 치즈의 조화가 일품인 잠봉 프로마쥬.
시나몬 흑설탕이 듬뿍 묻은 코젤 다크
달콤한 시나몬 흑설탕이 흑맥주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테이블 위의 잠봉뵈르와 음료
간단한 식사나 맥주 한 잔 즐기기에 완벽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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