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그 이름만 들어도 코끝에 맴도는 짭짤한 해풍과 싱그러운 감귤 향. 하지만 오늘 나의 실험 대상은 낭만적인 풍경이 아닌, 미지의 영역에 숨겨진 맛의 정점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숙소 호스트의 은밀한 귀띔으로 알게 된 제주산책.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번화가가 아닌, 현지인들의 숨겨진 아지트 같은 맛집이라고 했다. 쥐치, 벵에돔…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재료들이 나를 자극했다. 마치 심해 탐사선에 몸을 싣는 탐험가의 심정으로, 나는 미지의 맛을 찾아 나섰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밤하늘 아래 빛나는 “제주산책”이라는 세 글자. 낡은 건물 외벽에 붙은 간판은 마치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지켜온 듯한 인상을 풍겼다. 100% 자연산이라는 문구가 묘하게 신뢰감을 준다. 간판 옆에는 CU 편의점이 자리 잡고 있어,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대로 아담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은 몇 개 놓여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정겨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벽에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사진과 싸인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그중에는 유명인의 흔적도 더러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원희룡 장관이 방문했던 사진도 걸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곳이 단순한 식당이 아닌, 스토리가 있는 공간임을 직감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인장이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시간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 특유의 건강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메뉴판을 보니, 역시나 쥐치와 벵에돔이 주력 메뉴였다. 주인장은 직접 배를 타고 나가 잡아온 자연산 활어만을 사용한다고 했다. 쥐치회와 쥐치구이, 그리고 매운탕을 주문했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주문 후, 잠시 가게 안을 둘러봤다. 한쪽 벽면에는 수족관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쥐치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쥐치의 독특한 외형은 마치 복어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더 날렵해 보였다. 녀석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자니, 곧 내 입 안으로 들어올 녀석들이라는 생각에 묘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향한 나의 과학적인 탐구욕은 그 죄책감을 압도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밑반찬이었다. 돌낙지회, 돌문어숙회, 뿔소라 등 제주에서 갓 잡아 올린 해산물들이 조금씩 나왔다. 특히 돌낙지는 입 안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신선함이 일품이었다. 뿔소라는 특유의 꼬득꼬득한 식감과 함께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겼다. 신선한 해산물을 맛보는 순간, 이곳이 왜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제주 맛집인지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스끼다시일지라도,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쥐치회가 등장했다. 얇게 포를 뜬 쥐치회는 투명한 듯 뽀얀 자태를 뽐냈다. 쥐치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느껴졌다. 활어회 특유의 감칠맛은 글루타메이트와 이노시네이트의 환상적인 조합 덕분일 것이다.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으니, 쥐치 본연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씹을수록 느껴지는 은은한 단맛은, 마치 잘 숙성된 고급 치즈를 연상케 했다. 실험 결과, 쥐치회는 기대 이상의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다음 타자는 쥐치구이였다. 노릇하게 구워진 쥐치구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160도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고기 표면에 형성된 갈색 크러스트는 시각적으로도 식욕을 자극했다. 쥐치 살은 콜라겐 함량이 높아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했다. 껍질에는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고소한 풍미를 더했다. 뼈째 씹어 먹으니, 칼슘 섭취는 덤이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매운탕은, 그야말로 이날 실험의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뚝배기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매운탕은, 보는 것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했다. 국물 한 입을 떠먹으니,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온몸을 휘감았다. 캡사이신이 TRPV1 수용체를 자극하여 통증과 쾌감을 동시에 유발하는, 그야말로 마성의 맛이었다. 쥐치 뼈에서 우러나온 콜라겐과 각종 아미노산은, 국물의 깊이를 더했다. 탄수화물 섭취를 최소화하기 위해 밥은 먹지 않았지만, 도저히 국물을 남길 수는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주인장이 돔 쓸개를 소주에 섞어 줬다. 쌉쌀하면서도 묘하게 향긋한 맛은, 마치 오래된 약초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인장은 돔 쓸개가 간 기능 개선과 피로 해소에 좋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뱃사람들이 배 위에서 갓 잡은 생선의 쓸개를 술에 타 마시며 피로를 풀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효능은 아니지만, 왠지 기분 탓인지 몸이 가뿐해지는 듯했다.
제주산책에서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신선한 재료, 주인장의 푸근한 인심,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특히 쥐치라는 생선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어쩌면 쥐치는, 내가 평생 모르고 지나칠 뻔한 미지의 맛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제주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데, 주인장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의 따뜻한 미소는, 마치 고향집에 다녀온 듯한 푸근함을 느끼게 했다. 차가운 도시의 삶에 지쳐있던 나에게, 제주산책에서의 경험은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다음에 제주에 오게 된다면, 반드시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그때는 벵에돔 회에 도전해 봐야겠다.
실험 결과: 제주산책은 단순한 맛집이 아닌, 제주의 숨겨진 맛과 정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쥐치회, 쥐치구이, 매운탕 모두 훌륭했으며, 특히 쥐치라는 생선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주 지역을 여행한다면, 반드시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다만, 테이블이 많지 않으니 예약은 필수다. 나의 미식 지도는, 이렇게 또 한 곳의 보석 같은 장소를 추가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