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빗방울이 처마 끝에서 쉼 없이 떨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전주로 향했다. 오래된 기억 속 한 켠에 자리 잡은 설렁탕 한 그릇의 따뜻함이 그리워서였다. 전주에 도착하니 촉촉하게 젖은 공기가 나를 감쌌다. 빗소리는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아늑하게 들려왔다. 목적지는 덕진공원 바로 앞에 자리한 ‘족보설렁탕’.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기 전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한옥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기와지붕 위로 빗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했다. 짙은 회색빛 기와와 나무 기둥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커다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며 이곳이 100% 한우 설렁탕을 판매하는 곳임을 알리고 있었다.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지만, 다행히 회전율이 빠른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빗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기대감을 높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밖의 궂은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내부는 밝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과 의자는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은은한 조명이 공간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메뉴판은 벽에 걸려 있었는데, 설렁탕 외에도 수육, 떡갈비, 우거지탕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설렁탕을 주문했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뚝배기가 눈 앞에 놓였다. 뽀얀 국물은 보기만 해도 속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놋으로 된 뚜껑을 열자, 얇게 썰린 고기와 소면이 국물 속에 잠겨 있었다. 테이블 한 켠에는 대파가 넉넉하게 담겨 있어 취향에 맞게 넣어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국물부터 맛보았다. 깊고 진한 사골 육수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맑으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동시에 느껴지는 오묘한 맛이었다. 간이 강하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후추와 소금을 살짝 넣어 간을 맞추니 더욱 깊은 맛이 느껴졌다. 마치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끓인 보약을 마시는 듯한 기분이었다.

설렁탕에 들어있는 고기는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마치 수육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면은 넉넉하게 들어있어 부족함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쫄깃한 면발은 국물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입 안에서 부드럽게 넘어갔다.
반찬도 훌륭했다. 특히 어리굴젓은 신선하고 짭짤한 맛이 일품이었다. 삭힌 묵은 김치는 전라도 특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아삭한 깍두기는 적당히 익어 설렁탕과 함께 먹으니 입 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집 김치 맛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다만, 배추김치는 볶음김치 스타일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설렁탕의 깊은 맛을 느끼기에는 다소 밍밍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예전에 비해 어리굴젓의 퀄리티가 떨어진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8시가 넘은 시간에는 설렁탕 외에 다른 메뉴 주문이 불가능한 점도 아쉬웠다. 특히 떡갈비는 실망스럽다는 평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 옆에 마련된 후식 코너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커피, 매실차, 옛날 과자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달콤한 매실차로 입가심을 하고, 과자를 하나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따뜻한 설렁탕 한 그릇 덕분에 마음은 한결 평온해졌다. 족보설렁탕은 화려하거나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소박한 위로를 건네는 곳이었다. 마치 고향집에 온 듯한 푸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덕진공원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촉촉하게 젖은 나무들과 은은한 조명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족보설렁탕에서의 따뜻한 기억을 간직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전주를 떠났다. 전주 맛집 기행은 언제나 옳다.
총평:
* 맛: 깊고 진한 사골 육수의 풍미가 느껴지는 설렁탕. 밍밍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 가격: 설렁탕 10,000원. 가격이 다소 오른 감이 있지만, 여전히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 분위기: 한옥의 고즈넉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분위기.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 서비스: 친절하고 신속한 서비스.
* 총점: 4/5점. 전주에 방문한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다.

Tip:
* 점심시간에는 손님이 많으니, 조금 일찍 방문하는 것이 좋다.
* 주차장이 넓지만, 식사 시간에는 혼잡할 수 있다.
* 김치와 깍두기는 셀프로 가져다 먹을 수 있다.
* 후식으로 제공되는 과자는 종류가 다양하니, 취향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다.
* 화장실은 남녀공용이며, 시설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족보설렁탕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전주의 역사와 추억이 담긴 공간이었다. 한 그릇의 설렁탕에는 따뜻한 위로와 깊은 감동이 담겨 있었다. 비 오는 날, 족보설렁탕에서 맛본 설렁탕 한 그릇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