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을 잡고 찾았던 좌동재래시장의 기억은, 낡은 풍경 사진처럼 희미하게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 골목을 다시 걷는다. 목적지는 변함없이, 31cm 해물칼국수 본점. 좁다란 골목길, 사람들의 웅성거림, 눅진한 습도마저 정겹게 느껴지는 건, 이 곳에 깃든 추억 때문이리라.
시장 어귀에 다다르자,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간판이 보인다. “31cm 해물칼국수”. 투박한 글씨체는 어쩐지 어머니의 손글씨처럼 따뜻하다. 낡은 건물 외벽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칼국수의 향기는 여전하다. 가게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이 집 칼국수를 맛보기 위한 기다림은,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일상이니까.
기다리는 동안, 시장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좌판에 펼쳐진 싱싱한 해산물, 갓 구워낸 빵 냄새, 흥정하는 상인들의 목소리… 활기 넘치는 시장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멋진 풍경화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건, 가게 한 켠에서 연신 구워져 나오는 해물파전이다. 노릇하게 구워진 파전 위로 오징어와 새우가 넉넉하게 올라간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좁은 공간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테이블마다 놓인 거대한 칼국수 그릇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벽에는 메뉴 사진과 가격표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31cm 해물칼국수, 해물파전, 조개탕… 단출한 메뉴 구성이지만, 하나하나가 내공이 느껴지는 듯하다.
자리에 앉자마자, 31cm 해물칼국수 2인분과 해물파전을 주문했다.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칼국수가 나왔다. 뽀얀 국물 위로 홍합, 가리비, 동죽 등 각종 조개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은, 과연 장관이었다. 31cm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릇은 정말 컸다. 마치 세숫대야를 연상시키는 크기였다.
젓가락을 들고 조심스럽게 국물을 맛보았다. 캬…! минем 탄성이 절로 나왔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은, 전날 마신 술 때문에 텁텁했던 속을 단번에 풀어주는 듯했다. 청양고추가 송송 썰려 들어가, 은은하게 매운맛이 감돌았다.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게 매운맛은, 정말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면발은 탱글탱글하고 쫄깃했다. 직접 반죽해서 뽑은 손칼국수라 그런지, 기계면과는 확연히 다른 식감을 자랑했다. 면발 사이사이로 국물이 잘 배어 있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후루룩, 후루룩… 쉴 새 없이 면을 흡입했다.

칼국수 안에 들어 있는 조개는, 정말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푸짐했다. 홍합, 가리비, 동죽은 물론, 이름 모를 작은 조개들까지…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건져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동죽은 처음 먹어봤는데, 살이 통통하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마치 바다를 통째로 삼킨 듯한 신선함이 느껴졌다.
칼국수를 먹는 중간중간, 김치를 곁들여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집 김치는 겉절이 타입의 새김치와 달달한 석박지, 두 종류가 나오는데, 둘 다 정말 맛있었다. 맵싹한 겉절이는 칼국수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달달한 석박지는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겉절이는 매운맛이 강렬했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묘하게 끌리는 맛이었다. 김치만 따로 판매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하니, 그 맛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해물파전 역시,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파전은, 젓가락으로 찢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파전 안에는 오징어와 새우가 넉넉하게 들어 있었는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특히 파전과 함께 나오는 간장 소스에 청양고추가 송송 썰려 들어가 있어,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어느덧 칼국수와 파전을 깨끗하게 비웠다. 배는 불렀지만,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맛있는 칼국수를, 이제 또 언제 먹을 수 있을까. 계산을 하고 가게 문을 나서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셨다. “다음에 또 오세요!”
31cm 해물칼국수 본점. 그 곳은 단순한 맛집이 아닌, 추억과 행복이 깃든 특별한 공간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시장 골목, 뜨거운 칼국수 한 그릇,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의 따뜻한 미소… 이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부산에 올 일이 있다면,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 그 때는 칼국수 곱빼기에 파전, 그리고 막걸리까지 시켜서, 제대로 즐겨봐야지.
가끔은, 익숙한 풍경 속에서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기도 한다. 좌동재래시장의 31cm 해물칼국수가, 나에게는 그런 존재다. 변함없는 맛과 푸짐한 인심,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 이 곳은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다.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연신 칼국수 맛있었다는 말씀을 되뇌이셨다. 낡은 시장 골목을 걸으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맛있는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워주는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맛있는 음식은, 잊고 지냈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매개체일지도 모른다고. 해운대 좌동시장에서 맛본 칼국수 한 그릇은,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앞으로도 어머니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그리고, 그 추억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덧붙이는 이야기
* 31cm 해물칼국수 본점은 해운대 좌동재래시장 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며, 브레이크 타임은 오후 3시부터 5시까지입니다.
* 주차는 시장 공영주차장을 이용하시면 1시간 무료 주차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칼국수 외에도 해물파전, 조개탕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 김치가 매우 매운 편이니, 매운 음식을 못 드시는 분들은 미리 말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 주말에는 웨이팅이 길 수 있으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방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