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하면 왠지 모르게 깔끔하고 정돈된 이미지가 떠오르잖아? 88올림픽을 위해 계획적으로 개발된 곳이라 그런가 봐. 그래서인지 오래된 맛집을 찾기가 쉽지 않은 동네인데, 그중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노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냉큼 달려가 봤지. 이름하여 ‘개성집’. 80년대 초, 목동 신시가지가 건설되기 전 함바집으로 시작했다니, 이 동네에선 거의 터줏대감 수준이라고.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그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목동 사거리에서 내려 곰달래길 언덕을 따라 걷다 보니, 네네치킨 건물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개성집이 눈에 들어왔어. 언덕길에 지어진 건물이라 입구가 두 군데인데, 어느 쪽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1층이 되기도 하고 지하 1층이 되기도 하는 독특한 구조였지. 간판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에서부터 왠지 모를 깊은 맛이 느껴지는 듯했어.
문을 열고 들어서니, 토요일 저녁 6시쯤이었는데 아직은 한산한 분위기였어.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좌식 테이블,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 테이블, 그리고 신발을 신고 앉는 테이블까지 다양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지. 나는 편안하게 신발을 벗고 따뜻한 온돌 바닥에 자리를 잡았어. 곧이어 결명자차를 내어주시는데, 은은한 향이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느낌이랄까. 이런 사소한 배려에서부터 맛집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

메뉴판을 펼쳐보니 제일 윗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건 역시 만두국이었어. 그 뒤로 찐만두, 소머리국밥, 보쌈, 빈대떡이 쭈르륵 이어지는 구성.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옛날 메뉴 그대로 이어져 왔다고 하니 더욱 기대감이 커졌어.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니, 만두국과 찐만두는 10,000원, 소머리국밥은 11,000원, 보쌈 小자는 33,000원, 빈대떡 小자는 11,000원이네. 가격이 조금 오른 것 같긴 하지만,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가격인 것 같아.
개성집은 1934년생인 이유순 할머니가 창업했고, 지금은 먼 친척인 현 대표가 2대째 운영하고 있다고 해. 창업주 할머니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 외가는 개성이라는데, 아마 어머니에게서 맛본 개성 음식을 선보였을 거라고 하더라고. 2009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할머니는 주방에서 가장 아끼는 것으로 ‘손수 담근 간장’을 꼽았대. 그 간장을 쓰지 않으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며, 힘들어서 간장을 못 담게 되면 장사를 그만해야겠다는 말까지 하셨다니, 그 맛에 대한 고집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었어.
고민 끝에, 나는 만두국과 보쌈을 주문했어. 잠시 후, 기본 반찬으로 깍두기와 김치가 나왔는데, 겉절이 스타일의 김치가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젓가락이 저절로 향하더라. 곧이어 보쌈이 나왔는데, 딱 알맞은 크기의 접시에 밝은 톤의 보쌈 고기가 가득 담겨 나왔어. 화려한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깨끗하고 깔끔한 모습에서 개성 음식 특유의 소박함이 느껴졌지.

보쌈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니, 잡내는 전혀 없고 기름기는 쫙 빠진 쫀쫀한 식감이 정말 좋았어. 특히, 보쌈김치를 따로 내어주는데, 기본찬으로 나오는 잘게 썰은 김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 내 둔한 혀로는 맛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어쨌든 둘 다 맛있었다는 거! 야들야들한 보쌈과 아삭한 김치의 조화는 정말 환상적이었어.
보쌈을 어느 정도 먹어갈 때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두국이 나왔어. 뽀얀 국물에 큼지막한 만두가 옹기종기 담겨 있는 모습이 어찌나 먹음직스럽던지! 보통 만두국은 인원수에 맞춰 만두를 넣어주시는 것 같았어. 혼자 온 손님에게는 만두 두 알, 두 명에게는 세 알 이런 식으로 말이야.

만두국은 정말 심플한 모습이었어. 만두와 국물, 딱 두 가지 재료만으로 이루어져 있었지. 조미료 맛이 강한 국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개성집 만두국은 간이 가볍고 깨끗해서 계속해서 국물을 들이켜게 되더라. 멸치 육수 베이스인 것 같은데,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정말 일품이었어.
만두 하나를 건져 반으로 갈라보니, 애호박, 부추, 마늘, 표고가 듬뿍 들어간 만두소가 눈에 들어왔어. 고기를 너무 잘게 갈지 않아서 씹는 맛도 살아있고, 부드러운 고기 사이로 호박과 부추의 질감이 느껴지는 게 정말 좋았어. 만두소는 맑고 촉촉했고, 씹을수록 은은한 채소 향이 퍼져나가는 게 정말 맛있었어.

만두를 먹으면서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어. 짜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잘 못 드시는 부모님도 개성집 만두국은 정말 맛있게 드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냉동만두 10알(14,000원)을 포장해왔어. 집에서 끓여 드렸더니, 역시나! 너무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더라.
다음에 개성집에 가면 소머리국밥과 빈대떡도 꼭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특히, 소머리국밥은 뽀얀 국물에 파가 듬뿍 올려져 나오는 비주얼이 정말 인상적이었거든. 푹 고아낸 소머리 국밥은 느끼함 없이 깨끗하면서도 묵직한 맛이 일품이라고 하니, 안 먹어볼 수가 없잖아?
개성집은 슴슴한 이북 음식 특유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어. 간이 세지 않아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 물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슴슴함이 좋았어.
개성집은 곰달래길 언덕 옆,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아가기가 쉽지만은 않아. 게다가 주차 공간도 넉넉하지 않아서 차를 가져가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목동에서 오래된 노포의 깊은 맛을 느끼고 싶다면, 꼭 한번 방문해보길 추천해.
아, 그리고 개성집은 브레이크 타임이 있으니 방문 전에 꼭 확인하고 가는 게 좋을 거야. 또, 만두는 조리되지 않은 상태로 포장도 가능하니, 집에서 직접 끓여 먹고 싶다면 포장해오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만두국을 먹고 나니,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어. 다음에는 부모님 모시고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분 좋게 개성집을 나섰어. 역시, 목동의 숨은 맛집은 다르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