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으로 여름휴가를 떠나기 며칠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어. 남편이 살아생전 그토록 가자고 노래를 불렀던 어죽집이 바로 이 근처에 있었거든. 남편 떠나보내고 한동안 정신없이 지내다 이제야 용기를 내 동생, 언니와 함께 길을 나섰지. 파라호의 푸른 물결을 옆에 끼고 달리니, 마치 남편이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
굽이굽이 길을 따라 들어가니, 드디어 ‘향토 어죽탕’ 간판이 눈에 띄더군. 간판 글씨부터 예사롭지 않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 잘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오래된 골동품 가게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어. 낡은 피아노도 놓여있고, 여기저기 그림과 글씨들이 걸려 있는 게, 주인장께서 예사로운 분은 아니시구나 싶었지. 알고 보니 주인장께서 문인이시라네. 어쩐지, 가게 곳곳에 예술가의 향기가 느껴지더라. 한쪽 벽에는 메뉴가 손글씨로 정겹게 적혀 있었어. 잡고기 어죽탕, 감자부침, 두부구이…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역시 대표 메뉴인 어죽탕을 시켜봐야지.

주문하고 나니, 뽀얀 뚝배기에 담긴 어죽탕과 함께 정갈한 반찬들이 쫙 깔리는데, 이야, 이거 완전 잔칫상이 따로 없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 한 공기와 어죽탕, 그리고 김치, 무말랭이, 고추절임 등 보기만 해도 입맛이 확 도는 반찬들이었어.

어죽탕 냄새가 어찌나 구수한지, 숟가락을 들기 전부터 침이 꼴깍 넘어가더라. 뜨끈한 국물 한 숟갈을 떠서 입에 넣으니, 아이고, 이 맛이야!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 맛은 전혀 없고, 구수하고 진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게, 정말 옛날 엄마가 끓여주시던 그 맛 그대로였어.
어죽탕 안에는 밥알과 함께 시래기가 듬뿍 들어있었는데,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에서 살살 녹는 거야. 마치 걸쭉한 시래기된장국을 먹는 것 같기도 하고. 밥 한 숟갈 말아서 김치 한 조각 올려 먹으니, 캬, 이 맛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

반찬들도 하나하나 얼마나 맛깔스러운지. 특히 김치랑 무말랭이는 주인장께서 직접 담그신다는데, 역시 손맛이 다르긴 다르더라. 어죽탕이랑 같이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어. 고추절임도 매콤하니 입맛을 돋우는 게, 자꾸만 손이 갔지.

어죽탕을 먹다 보니, 남편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 살아생전 남편은 어죽을 참 좋아했거든. 어릴 적 강가에서 자라면서 어죽을 많이 먹었다면서, 나한테도 꼭 맛보여주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늦게나마 남편이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곳에 오니, 왠지 남편이 옆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찡했어.
동생이랑 언니도 어죽탕 맛에 푹 빠졌는지, 말도 없이 열심히 먹더라. 평소 입맛 까다로운 언니도 “여기 정말 맛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 동생은 “언니, 여기 진짜 보물 같은 곳이네. 화천에 이런 맛집이 있는 줄 몰랐어”라며 감탄하더군.

어죽탕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주인장께서 두부구이를 서비스로 내어주시더라. 이야, 인심도 후하시지. 두툼하게 구워져 나온 두부 위에 양념장을 얹어 먹으니, 이것 또한 별미였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두부의 식감이 정말 좋았어.

옆 테이블에서 감자부침을 어찌나 맛있게 드시던지, 우리도 하나 시켜봤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나온 감자부침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게, 정말 입에서 스르륵 녹는 맛이었어. 짭짤한 양념장에 콕 찍어 먹으니, 막걸리가 절로 생각나더라. 아쉽지만, 운전해야 하니 술은 참기로 했지.
식사를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오니, 정원이 예쁘게 꾸며져 있더라. 주인장께서 직접 가꾸신 정원이라는데,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어. 정원 한쪽에 놓인 그네에 앉아 잠시 쉬면서 화천의 맑은 공기를 마시니, 속이 다 편안해지는 기분이었어.

‘향토 어죽탕’은 맛도 맛이지만, 주인장님의 친절함과 푸근함이 정말 좋았어.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듯한 따뜻한 분위기였지. 계산할 때, 주인장님께서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맛있게 드셨는지 모르겠네”라며 따뜻한 말씀을 건네시는데, 괜스레 눈물이 핑 돌더라.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동생과 언니는 “정말 잊지 못할 화천 맛집이었어. 다음에 또 오자”라며 입을 모아 말했어. 나 역시,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이 곳을 잊지 못할 것 같아. 다음에는 꼭 남편 몫까지 더 맛있게 먹고 와야지.
화천에 간다면, 꼭 ‘향토 어죽탕’에 들러 어죽 한 그릇 맛보시길. 한 숟갈 뜨면 고향 생각나는, 따뜻하고 정겨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주인장님의 푸근한 인심은 덤이지!

참, 가게 분위기는 마치 6.25 전쟁 이전 이북 시절의 느낌도 난다고 하니, 어르신들은 더욱 추억에 잠기실지도 모르겠네. 젊은 사람들에게는 독특한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될 거고. 하지만 혹시 깔끔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골동품들이 좀 지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어. 컵에 립스틱 자국이 남아있거나, 뚝배기에 때가 낀 부분도 없잖아 있었거든. 그래도 난 이런 정겨운 분위기가 더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