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부산. 낯선 도시의 설렘 속에서도 늘 마음 한편에 자리한 것은 바로 그곳만의 특별한 맛을 탐색하는 즐거움이었다.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이곳, ‘세정’은 단순히 식사를 넘어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고 하여 나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이른 저녁, 어둠이 채 내려앉기 전 가게 앞에 도착했다. 간판에는 ‘세정’이라는 이름이 낯익은 듯 다가왔다. 1991년부터 이어져 온 이곳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시장의 소음과는 대조적으로 차분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가 나를 맞이했다. 따뜻한 조명 아래, 나무 테이블과 아담한 실내 공간은 마치 오랜 친구 집을 방문한 듯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살펴보았다. 이곳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한치모밀쟁반’이 단연 눈에 띄었다. 얇게 썰어낸 한치와 메밀면, 그리고 갖가지 신선한 채소를 특제 소스에 비벼 먹는 독특한 조합. 언뜻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었지만, 이내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늦은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예약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으면 상당한 대기를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극악의 웨이팅’이라는 표현도 있었지만,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이윽고 주문한 한치모밀쟁반이 나왔다. 투명하리만큼 얇게 썰어낸 한치는 마치 얼음을 닮아 있었고, 그 위로 윤기 나는 메밀면이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새콤달콤한 특제 소스는 군침을 돌게 했으며, 곁들여 나온 신선한 채소들은 다채로운 색감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했다. 이 한치모밀쟁반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앞접시에 덜어주시고, 손수 직접 비벼주는 퍼포먼스는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젓가락으로 메밀면과 한치, 채소를 살살 섞어내는 모습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첫 젓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마치 차가운 파도가 밀려오듯 시원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살얼음 동동 띄워진 한치의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은 그 자체로도 훌륭했지만, 탱글탱글한 메밀면과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여기에 새콤달콤한 특제 소스가 더해져,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었다.

이곳의 한치는 신선함은 물론, 살짝 얼려져 있어 씹을수록 시원한 풍미가 살아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흔히 물회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함과는 또 다른, 입안을 깔끔하게 정돈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흔히 물회에 곁들여지는 국수와는 다른, 메밀면 특유의 구수한 맛이 한치의 시원함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깊이를 더했다.

몇 번의 젓가락질로 면과 한치를 거의 다 비워갈 무렵, 직원이 다가와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 먹을 수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이 별미를 놓칠 수는 없지. 공깃밥을 추가해 남은 양념과 함께 쓱쓱 비벼내니, 어느새 훌륭한 별미가 탄생했다. 짭조름하면서도 새콤한 양념이 밥알 사이사이 스며들어, 처음과는 또 다른 풍미를 선사했다. 특히 밥알과 함께 씹히는 한치의 조각들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더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부산 최고의 맛집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모든 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미와 밸런스는,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밥을 비벼 먹는 과정은 이 음식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마치 모든 재료가 그 순간을 위해 준비된 듯, 입안 가득 퍼지는 복합적인 맛은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겼다.
물론, 긴 웨이팅 시간이나 좁은 공간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마저도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는 듯했다. 기다림의 시간 끝에 마주하는 한치모밀쟁반의 맛은 그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해주는 가치가 있었다.
저녁 식사 후, 부산의 밤거리를 거닐며 세정에서의 경험을 되짚어보았다.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닌, 지역 특색을 담은 독특한 음식을 통해 그 지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세정에서의 한치모밀쟁반은 그런 의미에서 부산이라는 도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이곳은 술 한잔 곁들이며 오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독특한 미식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욱 어울릴 것 같다. 부산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 기억을 따라 다시금 세정을 방문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맛있는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