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중앙시장, 산골에서 만난 순대 오마카세의 깊은 울림 – 서울의 맛집 탐방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퇴근길 발걸음은 자연스레 익숙한 골목 대신 낯선 시장의 아케이드로 향했습니다. 오래된 상봉동의 한 식당에서 흘러나온 ‘산골’ 이야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탓일까요. 우연처럼, 혹은 필연처럼 저는 봉천중앙시장의 숨겨진 풍경 속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시장의 입구는 꽤나 정갈했고,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라 북적임보다는 잔잔한 여유가 감돌았습니다. 이곳에 자리한 ‘산골’이라는 이름의 식당은, 한때 순대 오마카세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며 궁금증을 자아냈던 곳이었습니다.

식당 내부 테이블에 놓인 찬과 술국 재료
작지만 정겨운 식당의 풍경, 손님맞이를 위한 준비가 분주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실내는 생각보다 아담했습니다. 카운터를 중심으로 몇 개의 테이블이 놓인 공간은 피크 타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지도 모를 풍경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운 좋게도 우리는 네 명이어서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윽고 정갈하게 차려진 찬들은 평범하면서도 든든한 시골 밥상의 정취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따로 나온 묵은지였습니다. 3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 짜릿하도록 시큼한 맛은 혀끝을 자극하며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습니다.

첫 번째 주문은 ‘모둠’이었습니다. 두 개의 접시에 나누어 나온다는 이 메뉴는, 마치 이 식당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처럼 느껴졌습니다. 먼저 나온 모둠의 첫 번째 접시는 오롯이 머릿고기 살코기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주문 즉시 삶아낸 듯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살코기에서는 촉촉함이 배어 나왔습니다. 돼지 특유의 향이 옅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혀에 닿는 부드러움은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함은 단순한 육류의 맛을 넘어선 풍미였습니다.

모듬 순대의 다양한 부위
다양한 내장 부위와 순대가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이어 등장한 두 번째 접시에는 간, 허파, 암뽕, 새끼보, 막창, 그리고 순대 등 다채로운 내장 부위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부위들은 앞서 나온 머릿고기와는 또 다른 식감을 자랑했습니다. 처음의 따뜻함보다는 조금 더 온도가 낮게 느껴졌고, 각 부위마다 가진 고유의 향이 더욱 강하게 느껴져 소금을 곁들여 먹는 재미를 더했습니다. 특히, 특유의 향이 강했던 암뽕과 새끼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내장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달콤함과 신선함으로 가득했던 간은 이날의 베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머릿고기가 푸짐하게 담긴 접시
살코기 위주의 머릿고기는 부드러움과 고소함의 조화가 일품입니다.
다양한 내장 부위가 담긴 접시
간, 허파, 암뽕 등 다채로운 내장들이 한 접시에 담겨 있습니다.

2만 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의 모둠은 네 명이서 어느 정도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습니다. 식사를 마무리할 무렵, 우리는 ‘술국’을 주문했습니다. 양념장과 들깨가루가 어우러진 국물은 얼큰하면서도 구수했고, 은은하게 퍼지는 깻잎 향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뜨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깊은 풍미는 하루의 피로를 녹여주는 듯했습니다.

얼큰하고 구수한 국물의 술국
깻잎 향이 은은하게 배어나는 얼큰한 술국으로 식사의 풍미를 더합니다.

이곳 ‘산골’에 먼저 와본 일행은 닭고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메뉴로 1만 원짜리 닭고기를 주문했습니다. 이미 삶아진 닭을 냉장고에서 꺼내 살짝 데워 큼지막하게 찢어 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접시 바닥에는 자작한 육수가 고여 있었고, 그 위로 넉넉하게 올라간 파는 닭고기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촉촉한 영계의 살코기에 향긋한 파를 얹어 먹으니, 그 맛은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온다면 정말 가성비 넘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촉촉한 닭고기 요리
파를 얹어 먹으면 더욱 달콤하고 식감이 살아나는 닭고기 요리입니다.

모둠과 술국을 맛본 후, 다음 방문 때는 머릿고기와 순대국 조합, 혹은 머릿고기에 라면을 곁들여 보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이 집의 머릿고기는 정말이지 훌륭했고, 순대는 분식집에서 맛보던 그 익숙한 맛과도 사뭇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이곳 ‘산골’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을 넘어,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가성비는 물론이고, 친절하신 아주머니들의 따뜻한 인심까지 더해져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을 보며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도 드셨다던데, 오히려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한 태도로 직원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손님들을 보며, 이곳을 계속해서 찾아주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봉천중앙시장의 작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산골’에서의 한 끼 식사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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