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여행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 익산. 그곳에서 낯선 듯 익숙한 이탈리아의 풍미를 만난다는 것은 예기치 못한 행운이었다. 서울에서 200km, 멀게는 사르데냐에서 8000km나 떨어진 이곳에, 마치 그곳의 향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연 어떤 맛과 향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띠나라는 이름은 왠지 모르게 따스한 아침을 연상시켰다. 붉은색 문이 열리자, 은은한 조명 아래 정돈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넓지는 않았지만, 아늑함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와인병들과 세심하게 정돈된 유리잔들은 이곳이 단순한 식당이 아닌, 와인과 음식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이가 운영하는 곳임을 짐작게 했다. 셰프 사장님 혼자서 모든 것을 꾸려나가신다는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었다.

메뉴판을 훑으며 어떤 선택을 할까 고심하던 중, 우리의 시선은 광어 까르파쵸에 멈췄다. ‘입맛을 돋운다’는 에피타이저의 본질에 얼마나 충실할까. 기대감 속에 주문한 광어 까르파쵸는 그 기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얇게 저민 광어 위로 신선한 토마토가 붉은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새콤달콤한 토마토의 풍미와 부드러운 광어의 조화는 마치 입술에 닿는 첫 키스처럼 싱그럽고 매혹적이었다. ‘토마토가 이렇게 매력적인 재료였나?’ 하는 새삼스러운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해산물의 신선함과 어우러진 상큼함에, 우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풍미를 더욱 섬세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은 무엇일까. 셰프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추천을 부탁드렸고, 그가 내어준 화이트 와인은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켰다. 처음 맛보는 와인이었지만, 우리의 취향에 놀랍도록 잘 맞았다. 잔을 부딪히며 나누는 감탄은 이탈리아의 햇살 아래 포도밭을 거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등장한 메인 요리, 화이트 라구 파스타와 트러플 라비올리는 앞선 감동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부드러운 크림 베이스에 고기의 풍미, 그리고 후추의 은은한 알싸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화이트 라구 파스타는 우리의 ‘천천히 먹겠다’는 다짐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젓가락 대신 포크를 들고 순식간에 면치기를 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맛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 속에 숨겨진 섬세한 킥이 모든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완성도 높은 요리였다.

그리고 트러플 라비올리. 톡 터지는 트러플의 향긋함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요리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트러플이 무엇인지, 어떻게 요리에 녹아들어 황홀한 향과 맛을 완성하는지, 이 작은 라비올리 하나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쫄깃한 파스타 피 속을 채운 풍성한 속 재료와 입안 가득 퍼지는 트러플의 풍미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와인이 조금 남아, 디저트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향했다. 티라미슈와 그에 어울리는 디저트 와인을 주문했다. 티라미슈는 ‘이것이 바로 티라미슈다’라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하지만 분명히 다른 곳과는 차별화된 깊고 풍부한 맛을 선사했다. 짝꿍은 디저트 와인을 극찬했지만, 내게는 조금 강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와인과 디저트가 만들어내는 조화에 대한 셰프 사장님의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었다.
양이 적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셰프 사장님의 와인에 대한 철학, 음식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려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집약된 높은 퀄리티의 요리.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순간의 행복감과 감사함은 어떤 양적인 만족감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것이었다. 8000km 떨어진 사르데냐의 풍경과 음식, 그리고 와인이 이토록 생생하게 되살아날 줄이야.
익산에 갈 일이 없더라도, 와인과 음식, 그리고 그 둘의 완벽한 마리아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아름다운 경험을 위해 익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기라고 주저 없이 말하고 싶다. 마띠나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질 한 편의 서정적인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