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흥 땅을 밟았다.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이곳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정겨움으로 나를 맞이했다. 목적지는 단 하나,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드나들던 순대국밥집, ‘고흥집’이었다. 흐릿한 기억 속의 그 맛을 찾아,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 문을 열자, 훈훈한 온기와 함께 익숙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낡은 테이블과 의자, 벽에 붙은 빛바랜 메뉴판은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했다. 60~70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순대국밥을 즐기는 모습은,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벽에 걸린 메뉴판을 살펴보니, 순대국밥 가격이 여전히 착하다. 물가 상승을 체감하기 어려운 가격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순대국밥을 주문했다.
잠시 후,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는 순대국밥이 눈앞에 놓였다. 뽀얀 국물 위로 송송 썰린 파와 다진 양념이 얹어져 있었다. 코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향은 아니었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입 떠 맛보았다. 깊고 진한 육수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정성껏 끓여낸 듯한 깊은 맛이었다.
순대와 함께 푸짐하게 들어있는 고기의 양에 놀랐다. 특히 점심시간에 방문하면 고기를 더 많이 준다고 하니, 다음에는 점심시간에 맞춰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드러운 식감의 고기는, 국물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잘 익은 깍두기를 국밥에 곁들여 먹으니, 그 맛이 더욱 풍성해졌다. 아삭한 깍두기의 식감과 시원한 맛은, 국밥의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 주었다. 젓갈 향이 살짝 감도는 깍두기는, 전라도 특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순대국밥 한 그릇을 비우니,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어릴 적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버지와 함께 왔던 기억,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먹었던 기억, 그리고 혼자 조용히 맛을 음미했던 기억까지.
고흥집은 단순히 순대국밥을 파는 식당이 아닌, 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변치 않는 맛과 정겨운 분위기는,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가끔은 화려하고 세련된 맛집도 좋지만, 이렇게 소박하고 정겨운 곳에서 푸짐한 인심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도 큰 행복이다. 고흥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고흥집에 들러 순대국밥 한 그릇을 맛보길 추천한다.

고흥집을 나서며, 따뜻한 순대국밥 한 그릇이 주는 든든함과 함께,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추억을 가슴에 품었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와 함께 이 맛있는 순대국밥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흥집은 단순한 식당을 넘어, 고흥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소중한 공간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추억과 맛있는 음식을 선사해주길 바란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맛보는 순대국밥 한 그릇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고흥집은 그런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고흥의 숨겨진 보석 같은 맛집이다.

고흥집에서의 식사는, 마치 잘 쓰여진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듯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