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아침은 늘 설렘으로 시작된다. 푸른 바다와 맑은 공기, 그리고 오늘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만나게 될까 하는 기대감. 이번 여행에서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곳은 한림에 위치한 작은 짬뽕집, ‘그시절그짬뽕’이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화려한 맛집이 아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소박한 공간에서 50년 경력의 노부부가 만들어내는 짬뽕이라니, 이야기가 있는 맛을 찾아 떠나는 미식가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과연 허름한 상가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그시절그짬뽕’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건물 외관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겹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오랜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기분이랄까.
평일 점심시간을 살짝 비껴간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게 앞에는 이미 4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줄이 늘어서 있었다. 역시, 숨겨진 맛집은 숨겨지지 않는 법인가 보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를 미리 살펴보았다. 메뉴는 단촐했다. 고추짬뽕, 삼선짬뽕, 짜장면. 메뉴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의 메뉴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얼큰한 국물이 땡겨 고추짬뽕을 선택했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가게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더 아담했다. 테이블은 네댓 개 정도밖에 없었고, 혼자 온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합석하는 분위기였다. 나도 마침 혼자였기에, 창가 쪽 4인 테이블에 다른 손님과 마주 앉았다. 다소 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묘하게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오픈 키친 너머로, 백발의 할아버지 셰프님이 쉴 새 없이 웍을 돌리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다. 주방은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셰프님의 복장 또한 단정했다. 마치 오랫동안 손때 묻은 연장을 사용하는 장인처럼, 능숙하고 진지한 손길에서 50년 내공이 느껴졌다. 거대한 환기 시설이 쉼 없이 돌아가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주문은 고추짬뽕으로 통일. 잠시 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추짬뽕이 내 앞에 놓였다. 붉은 빛깔의 국물 위로 듬뿍 올려진 해산물과 야채들이 식욕을 자극했다. 짬뽕 그릇과 스테인리스 젓가락, 그리고 자차이와 단무지를 담은 작은 접시가 소박한 느낌을 더했다.
젓가락을 들어 면을 휘저어보니, 뽀얀 면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느 중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란색 면이 아닌, 강화제를 넣지 않은 듯한 하얀 면발이었다. 한 젓가락 크게 집어올려 맛을 보니, 쫄깃함보다는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졌다. 겉도는 느낌이라는 평도 있지만, 내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짬뽕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국물이었다. 국물을 한 입 맛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흔히 맛볼 수 있는 자극적인 짬뽕 국물이 아닌, 깊고 풍부한 맛이 느껴졌다. 해산물과 돼지고기, 각종 야채에서 우러나온 듯한 진한 육수는 시원하면서도 깔끔했고, 은은하게 퍼지는 불향은 입맛을 돋우었다. 맵기는 신라면 정도라고 하는데,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나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였다.
국물 속에는 딱새우, 굴, 오징어 등 다양한 해산물이 아낌없이 들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딱새우 껍질이 모두 손질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 짬뽕에 들어가는 딱새우는 껍질 때문에 먹기가 불편한데, 이곳에서는 껍질을 깔 필요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작은 부분이지만,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면을 어느 정도 먹고 난 후에는, 밥을 말아 먹었다. 역시, 짬뽕 국물에는 밥이 빠질 수 없지. 밥알에 국물이 스며들어 더욱 깊은 맛을 내는 것이, 마치 하나의 완벽한 요리를 완성하는 듯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숟가락을 놓을 수 없었다.
정신없이 짬뽕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현지인으로 보이는 손님이 카드 단말기로 직접 계산하고 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물과 반찬, 퇴식까지 모두 셀프로 운영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오히려 그런 소탈함이 이 짬뽕집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도 빈 그릇을 퇴식구에 가져다 놓았다. 할머니 사장님은 “맛있게 드셨어요?”라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셨다. 그 미소에 나도 모르게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가게를 나서면서, 영수증을 확인했다. 고추짬뽕 한 그릇에 만 원.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50년 내공의 셰프가 정성껏 만들어주는 짬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 있는 가격이었다.

‘그시절그짬뽕’은 분명 화려하거나 세련된 맛집은 아니다. 하지만 50년 내공의 노부부가 만들어내는 정성 가득한 짬뽕 한 그릇에는, 그 어떤 미슐랭 레스토랑도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맛과 감동이 있었다. 제주 한림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꼭 한번 방문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분명 잊지 못할 제주 맛집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제주의 풍경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삶의 행복을 느끼는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음에는 간짬뽕과 잡채밥에도 도전해봐야겠다.
총점: 5/5
장점:
* 50년 경력의 셰프가 만드는 깊고 풍부한 짬뽕 국물
* 딱새우 등 신선한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푸짐한 양
* 손님을 배려하는 노부부의 따뜻한 마음
*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
단점:
*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웨이팅이 길 수 있음
* 셀프 서비스 시스템
*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면발
팁:
*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것을 추천
* 혼자 방문 시 합석은 필수
* 물과 반찬, 퇴식은 셀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