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내공이 느껴지는, 천호동 숙성회 맛집의 깊은 풍미

오랜만에 평일 반차를 내고, 미뤄뒀던 맛집 탐방에 나섰다. 목적지는 천호동 로데오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한진숙성회. since 1993이라는 문구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했다. 과거 ‘광주횟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이곳은, 숙성 광어회 단일 메뉴로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온 곳이라고 한다. 왠지 모르게 장인의 향기가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평일 오후 5시,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이미 손님들로 북적였다. 다행히 웨이팅 없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만, 30분만 늦었어도 긴 줄을 서야 했을 것이다. 벽에 붙은 메뉴판은 간결했다. 숙성회 대, 중, 소 사이즈와 매운탕. 메뉴가 단촐하면 단촐할수록, 그 맛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지는 법이다. 나는 숙성회 소 사이즈와 매운탕 작은 냄비, 그리고 초밥용 밥을 주문했다.

메뉴판
단촐하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메뉴 구성.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본 상차림이 차려졌다. 쌈 채소와 마늘, 고추, 메추리알, 그리고 쌈장, 초장, 간장. 곁들임 찬은 소박했지만, 회 맛을 돋우기에는 충분했다.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숙성회가 등장했다.

첫인상은 ‘정직하다’는 느낌이었다. 흔히 횟집에서 볼 수 있는 천사채나 무채 등의 불필요한 장식 없이, 오직 숙성 광어회만이 접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광어회는 두툼하게 썰려 나왔고, 그 아래에는 지느러미 살(엔가와)이 넉넉하게 깔려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양이 적어 보일 수도 있지만, 회 한 점 한 점이 워낙 두툼해서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숙성 광어회
군더더기 없이 정직한, 숙성 광어회의 자태.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회 한 점을 집어 들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윤기가 흐르는 표면은 숙성이 잘 되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먼저, 아무것도 찍지 않고 회 본연의 맛을 음미해 보았다. 입안에 넣는 순간, 놀라운 감칠맛이 퍼져 나갔다. 활어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고 풍부한 맛이었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 또한 인상적이었다.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광어 특유의 단맛이 더욱 살아나는 듯했다.

이번에는 와사비를 살짝 얹어 간장에 찍어 먹어 보았다. 은은한 와사비 향이 숙성회의 풍미를 더욱 끌어올렸다. 개인적으로 초장보다는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곳의 숙성회는 쌈장과의 조합 또한 훌륭했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쌈장이 광어의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새로운 차원의 맛을 선사했다. 깻잎에 쌈장을 듬뿍 찍은 회를 올리고 마늘과 고추를 곁들여 먹으니, 입안 가득 행복이 퍼져 나갔다.

쌈 채소
싱싱한 쌈 채소와 곁들여 먹는 숙성회는 또 다른 즐거움.

회를 어느 정도 먹고 난 후, 초밥용 밥을 주문했다. 동그랗고 작은 모양의 밥은, 회를 올려 먹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밥 위에 와사비를 살짝 얹고, 숙성회 한 점을 올려 초밥처럼 만들어 먹으니, 그 맛이 더욱 풍성하게 느껴졌다. 찰진 밥알과 쫄깃한 숙성회의 조화는, 입안에서 황홀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듯했다.

매운탕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매운탕.

마지막으로, 뜨끈한 매운탕이 등장했다. 뚝배기에 담겨 나온 매운탕은,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듯했다. 국물을 한 입 떠먹으니,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맵기만 한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은은한 감칠맛이 느껴지는 국물이었다. 매운탕 안에는 큼지막한 뼈와 살이 넉넉하게 들어 있었다. 특히, 뼈에 붙은 살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서, 먹는 재미를 더했다.

어떤 이들은 매운탕에 다진 마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내 입맛에는 깔끔한 국물 자체가 훌륭하게 느껴졌다. 국물을 몇 번 떠먹다가, 라면 사리를 추가했다. 붉은 국물 속에서 익어가는 라면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안주였다. 꼬들꼬들하게 익은 면발을 후루룩 먹으니, 뱃속까지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벽 한쪽에 ‘오늘 판매량’이 적혀 있었다. 내가 방문한 날은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양의 숙성회가 판매된 후였다. 역시 맛집은 맛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숙성회는, 획일화된 맛에 지친 미식가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숙성이라는 과정을 통해 끌어올린 광어 본연의 풍미는, 여느 횟집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맛을 선사한다. 또한, 불필요한 곁들임 없이 오직 회 맛으로 승부하는 점 또한 마음에 든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테이블 간 간격이 좁고, 다소 시끄러운 분위기라는 점은, 조용하고 편안한 식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생 와사비가 아닌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라면 사리
매운탕에 라면 사리를 추가하면 든든한 식사로 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한진숙성회는 분명 재방문 가치가 있는 곳이다. 숙성회 특유의 찰진 식감과 깊은 풍미는,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다음에는 꼭 주말을 피해서, 조금 더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숙성회를 즐기고 싶다. 천호에서 맛있는 숙성회를 찾는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 곳을 방문해 보시길 바란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이한진 숙성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
기본 상차림
정갈한 기본 상차림.
매운탕과 라면사리
매운탕에 라면 사리를 넣어 더욱 푸짐하게.
가게 외관
소박한 외관이 정겹다.
테이블 세팅
깔끔하게 정돈된 테이블.
매운탕
술안주로 제격인 매운탕.
초밥
초밥용 밥에 숙성회를 올려 먹으면 더욱 꿀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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