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이 깃든, 부산 향토 음식 할매재첩국에서 만난 추억의 맛집

새벽녘, 옅은 안개가 도시를 감싸 안은 시간, 나는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사상의 작은 골목에 숨어있는 맛집, ‘할매재첩국’. 어머니의 손맛을 닮았다는 그곳의 재첩국은 어떤 맛일까.

기차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릿했지만, 내 마음은 묘하게 설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따뜻한 재첩국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추억 속의 맛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상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할매재첩국’으로 향했다. 낡은 간판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건물. 겉모습은 소박했지만,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외벽과, 그 위를 장식한 ‘할매재첩국’이라는 정겨운 글씨체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을 선사했다. 커다란 창문에는 ‘ since 19XX’ 같은 문구 대신, 재첩국의 사진과 함께 간결하게 적힌 ‘재첩국’이라는 세 글자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 집의 역사는 아마도 저 낡은 벽돌 속에,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있겠지.

할매재첩국 외부 전경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할매재첩국’의 외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와 함께 재첩국 특유의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정겨운 사투리가 오가는 소리,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묘하게 조화롭게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메뉴판은 단촐했다. 재첩국과 재첩회, 단 두 가지 메뉴만이 존재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재첩국을 주문했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는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뽀얀 국물에 부추가 듬뿍 올려진 재첩국,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 그리고 정갈하게 담긴 밑반찬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재첩국 정식 한 상 차림
정갈하고 푸짐한 재첩국 한 상

가장 먼저 재첩국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맛보았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시원함, 그리고 은은하게 감도는 재첩의 향긋함. “어~ 시원하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인위적인 조미료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로지 재첩 본연의 깊은 맛만이 느껴졌다. 마치 어머니가 오랜 시간 정성껏 끓여낸 듯한 깊고 풍부한 맛이었다.

재첩은 6.25 전쟁 시절 피난민들이 낙동강 하구에서 잡아 끓여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그 시절의 애환과 추억이 담긴 음식이기에, 한 그릇의 재첩국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밑반찬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느껴졌다. 특히 고등어 무조림은 푹 익은 무와 함께 부드럽게 씹히는 고등어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무는 오랜 시간 푹 익혀져 흐물흐물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냈고, 고등어는 촉촉하고 부드러워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양념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을 내 밥과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자박한 국물은 마치 달콤한 한강 라면 국물 같다는 평도 있지만, 내게는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따뜻한 밥상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고등어 무조림
푹 익은 무와 고등어의 환상적인 조화, 고등어 무조림

잘 익은 배추김치는 손으로 쭉쭉 찢어 밥 위에 올려 먹으니, 아삭한 식감과 함께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특히 이 집의 김치는 썰지 않고 통째로 제공되는 점이 독특했다. 손으로 찢어 먹는 김치는 왠지 모르게 더 정겹고 맛있게 느껴졌다. 따뜻한 밥과 김치를 함께 먹고, 고등어 조림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니 마치 천상의 맛을 경험하는 듯했다.

또 다른 별미는 젓갈에 무친 부추김치였다. 독특한 향과 짭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양념이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푹 익은 무가 들어간 고등어조림, 깊은 맛이 느껴지는 된장국 역시 훌륭한 반찬들이었다.

어렸을 적 먹던 재첩국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이 집의 큰 매력이다. 재첩국을 시키면 비빔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비빔 그릇을 요청할 수 있다. 그릇에 밥과 함께 비빔 나물, 고추장을 넣고 슥슥 비벼 재첩국과 함께 먹으면 또 다른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재첩국에 들어간 부추
재첩국에 듬뿍 들어간 신선한 부추

나는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워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밥을 추가로 주문했다. 밥과 반찬은 얼마든지 리필이 가능하다고 했다. 인심 좋은 주인 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배불리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따뜻한 숭늉이 제공되었다.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가 놓여 있어, 직접 컵에 따라 마실 수 있었다. 구수한 숭늉은 입 안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주는 역할을 했다. 숭늉에 누룽지가 너무 딱딱해서 먹기 힘들다는 평도 있지만, 따뜻한 숭늉으로 속을 달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카운터에는 누룽지도 판매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손님들에게 누룽지를 나눠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누룽지를 앞 하천의 오리들에게 던져주기도 한다고. 나는 누룽지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바삭하고 고소한 누룽지는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메뉴 가격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메뉴 가격표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니, 재첩국 가격은 8천 원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한 상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재첩회는 1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재첩회도 한번 맛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매재첩국’은 넓은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어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식사 시간에는 손님들이 몰려 주차 공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 늦은 저녁 시간에는 고등어조림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은 문재인 대통령도 방문했던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가게 곳곳에는 대통령의 사진과 사인이 걸려 있었다. 유명 인사도 즐겨 찾는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자부심이 느껴졌다.

‘할매재첩국’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어떤 이들은 40년 넘게 단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변함없는 맛과 푸짐한 인심을 자랑하는 곳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가게 분위기는 다소 올드하고, 직원들의 친절함은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음식 맛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할매재첩국 외부 야경
밤에도 빛나는 ‘할매재첩국’ 간판

나는 ‘할매재첩국’에서 잊지 못할 아침 식사를 했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경험이었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날, 혹은 고향의 맛을 느끼고 싶은 날, 나는 주저 없이 ‘할매재첩국’을 찾을 것이다.

식당을 나서는 길, 나는 다시 한번 ‘할매재첩국’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단순히 맛있는 재첩국을 파는 식당이 아닌, 추억과 향수가 깃든 따뜻한 공간이 있었다. 부산 사상에서 만난 ‘할매재첩국’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맛집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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