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갑게 뺨을 스치던 날, 문득 따뜻하고 푸짐한 음식이 그리워 발걸음을 옮긴 곳은 울진 죽변에 자리한 어느 식당이었다. 이미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맛집’이라 불리며 명성을 쌓아온 곳이었지만, 어쩐지 이제야 그 앞에 선 나 자신이 낯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따뜻한 온기와 함께 은은하게 퍼지는 음식 냄새가 나를 감쌌다. 왁자지껄한 소음 대신, 정겹게 이어지는 이야기 소리와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어우러져 묘한 평온함을 선사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정겹게 놓인 테이블들이었다.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의 의자들이 마치 오랜 친구들처럼 나란히 앉아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따뜻한 난방이 틀어져 있어 마치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느덧 가을이 깊어가는 듯했다.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메뉴판을 살펴보니, 이곳의 터줏대감인 닭갈비와 시원한 막국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경험자들의 찬사를 받은 조합이기에, 망설임 없이 닭갈비와 막국수를 주문했다. 곁들임 메뉴로는 볶음밥을 빼놓을 수 없었다.

주문을 마치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테이블 한편에 걸린 ‘Since 1987’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자부심과도 같은 이 문구는, 이곳이 단순한 식당을 넘어 지역 주민들에게 오랜 추억과 맛을 선사해온 공간임을 짐작케 했다.
이윽고,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붉은 양념옷을 입은 닭갈비가 등장했다. 야채와 닭고기가 어우러져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처음에는 낯선 비주얼에 일반적인 닭갈비와 비슷하게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확실히 다른 점이 느껴졌다.

주방장님의 능숙한 손놀림에 따라 닭갈비가 익어가자, 매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텁텁함 없이 깔끔하게 매운맛이 감도는 소스가 인상적이었다. 첫 입을 베어 물었을 때, 예상치 못한 부드러움과 풍부한 육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닭고기 자체의 신선함도 느껴졌으며, 맵기 조절이 가능해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닭갈비를 맛보는 동안, 시원하고 깊은 맛이 일품인 동치미 국물이 곁들여졌다. 톡 쏘는 시원함과 함께 은은하게 퍼지는 깊은 맛은 닭갈비의 매콤함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닭갈비와 동치미는 서로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환상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곳의 닭갈비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쌈 채소에 싸서 먹으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신선한 쌈 채소의 아삭함과 닭갈비의 부드러움, 그리고 곁들여지는 쌈장이 어우러져 다채로운 식감과 풍미를 선사했다.
본격적인 식사의 절정을 향해 달려갈 무렵, 기다리고 기다리던 막국수가 등장했다. 놋쇠 그릇에 시원하게 담겨 나온 막국수는 그 자체로 예술 작품 같았다. 촘촘하게 말린 메밀면 위에는 신선한 채소와 계란 지단, 그리고 듬뿍 뿌려진 참깨가 어우러져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자랑했다.

살얼음 동동 뜬 시원한 육수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자, 더위가 씻은 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메밀면 특유의 고소함과 시원한 육수의 조화는 그 어떤 별미에도 뒤지지 않았다. 특히 함께 곁들여진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으니, 더욱 깊고 시원한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맛보았던 오리지널 닭갈비 맛과 함께, 이곳의 막국수는 진정한 ‘막국수 맛’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바로 볶음밥이었다. 철판 위에 남은 닭갈비 양념과 밥을 섞어 볶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연이었다. 주방장님은 팬에 붙은 소스를 깔끔하게 긁어내고, 그 위에 밥과 김치, 김가루 등을 넣고 능숙하게 볶아냈다.
기름기를 걷어내고 담백하면서도 고소하게 볶아진 볶음밥은, 닭갈비의 진한 여운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주는 완벽한 선택이었다. 꼬들꼬들한 밥알 하나하나에 양념이 배어들어, 씹을수록 고소함이 배가되었다. 닭갈비를 먹고 난 후, 볶음밥을 빼놓고는 식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음식이 맛있는 것만큼이나, 이곳의 또 다른 강점은 직원들의 친절함이었다. 처음 방문한 나에게도 마치 오랜 단골처럼 따뜻하게 응대해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장님께서 닭갈비 원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 자부심은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손님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넓은 매장은 여럿이 함께 방문해도 불편함 없이 쾌적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었다. 넉넉한 양 또한 만족스러웠다. 닭갈비와 볶음밥, 그리고 막국수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든든하고 건강한 한 끼를 완성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입안 가득 맴도는 닭갈비의 풍미와 시원한 막국수의 여운이 나를 감쌌다. 이곳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추억을 맛보고 정을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앞으로 울진을 방문할 때마다, 이 푸근하고 맛있는 집이 떠오를 것임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