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 30년 내공, 서부감자국에서 맛보는 추억의 감자탕 맛집 향수

어스름한 저녁, 오래된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야, 우리 어렸을 때 자주 가던 감자탕집 아직도 있는지 아냐? 갑자기 너무 먹고 싶네.” 친구의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당장 가자!”라고 외쳤다. 우리의 발길이 향한 곳은 바로 은평구, 그중에서도 응암동의 깊은 골목에 자리 잡은 서부감자국이었다.

초록색 간판에 큼지막하게 쓰인 ‘서부감자국’이라는 글자를 보니,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1992년부터 이 자리에서 묵묵히 감자국을 끓여왔다는 이곳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관부터가 남달랐다. 은평세무서 근처, 6호선 역촌역에서 6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대중교통으로도 접근성이 나쁘지 않지만, 우리는 추억을 되짚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가게 앞에 다다르니,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부감자국 외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서부감자국의 정겨운 외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활기찬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테이블은 예전의 좌식 스타일에서 모두 입식으로 바뀌어 한결 깔끔해진 모습이었다. 벽면에는 수많은 연예인들의 친필 사인과 사진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는데, 그만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맛집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성시경의 사인. 미식가로 소문난 그가 이곳을 추천했다니,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니, 감자국과 우거지 감자국 두 가지가 주 메뉴였다. 우리는 우거지 감자국 중(中)자를 주문했다. 예전에는 겨울철에 굴김치를 서비스로 줬다고 하는데, 이제는 굴을 따로 주문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굴 한 접시(생굴 한접시 13000원)도 추가로 주문했다.

밑반찬은 단출하게 겉절이 김치와 쌈장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겉절이 김치가 이 집의 숨은 공신이었다. 젓갈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양념이 듬뿍 들어간 김치는 감자국의 담백한 맛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김치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울 수 있을 정도였다. 싱싱한 굴을 김치에 싸서 먹으니, 입안 가득 퍼지는 바다의 향긋함과 매콤한 김치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굴과 김치

드디어 우거지 감자국이 테이블에 놓였다. 냄비 안에는 큼지막한 등뼈와 넉넉한 우거지, 그리고 통감자가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처음 나왔을 때 국물은 맑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끓기 시작하자, 감자 전분이 서서히 풀려 나오면서 국물이 점점 진해졌다. 뽀얀 국물 위로 송송 썰린 파와 다진 마늘이 넉넉하게 뿌려져 있어 시각적인 풍미를 더했다. 코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향은 없었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깊은 맛이 느껴졌다.

푹 익은 우거지부터 맛을 보았다. 국물을 머금은 우거지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고, 특유의 은은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우거지는 단순히 식감을 더하는 것을 넘어, 국물에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어서 잘 우러난 국물을 한 숟갈 떠먹어 보았다. 라면 스프를 연상시키는 칼칼함과 감칠맛이 느껴졌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국물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이었다.

우거지 감자국

등뼈는 국내산을 사용한다고 한다. 뼈에 붙어있는 살점도 넉넉했고, 부드럽게 분리되어 먹기 편했다. 살코기는 퍽퍽하지 않고 촉촉했으며,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흘러나왔다. 특히 좋았던 점은 돼지 특유의 잡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젓가락으로 살점을 발라, 겉절이 김치와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감자국에 들어있는 통감자는 젓가락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질 정도로 푹 익어 있었다. 포슬포슬한 식감의 감자는, 국물과 함께 먹으니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감자 특유의 달콤한 맛이 국물의 풍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다. 뜨거운 감자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느 정도 감자국을 먹고 난 후, 우리는 라면사리를 추가했다. 꼬들꼬들하게 익은 라면은, 진한 국물과 어우러져 또 다른 별미였다. 라면을 다 먹고 난 후에는, 볶음밥을 주문했다. 남은 국물에 김치와 김가루, 참기름을 넣고 볶아주는 볶음밥은, 서부감자국의 필수 코스였다.

볶음밥

볶음밥을 볶아주시는 이모님의 손놀림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순식간에 냄비 바닥에 얇게 펴진 볶음밥은, 살짝 눌어붙어 더욱 고소한 맛을 냈다. 볶음밥 한 숟갈을 떠서 입에 넣으니, 감칠맛 나는 국물과 김치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숟가락을 움직이며, 볶음밥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가격이 예전에 비해 크게 오르지 않은 듯했다. 푸짐한 양과 변함없는 맛을 생각하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손님이 많아지면 서비스가 조금 부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절한 직원분들 덕분에, 불편함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서부감자국은,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더 잘 맞을 것 같다. 텁텁하거나 느끼하지 않고, 맑고 개운한 국물은 술안주로도, 해장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아무리 오래 끓여도 국물이 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 끓여가면서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은은한 깊이의 맛이 매력적이었다.

서부감자국 한상차림

가게를 나서면서, 나는 서부감자국이 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맛은 아니었지만, 정직하고 깊은 맛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마치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따뜻한 국물처럼, 편안하고 푸근한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와 나는 서부감자국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역시, 옛날 맛 그대로네. 오랜만에 정말 맛있게 먹었다.” 친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부감자국은 단순한 맛집을 넘어,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준 곳이었다. 은평구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분명 잊지 못할 맛과 경험을 선사해줄 것이다.

총평:

서부감자국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는 맛과 푸짐한 인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맑고 깔끔한 국물, 부드러운 등뼈, 푸짐한 우거지, 그리고 맛깔스러운 겉절이 김치는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특히 볶음밥은 필수. 은평구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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