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의 숨결이 깃든, 옥천 구읍에서 맛보는 깊은 지역의 향수 맛집

옥천으로 향하는 길, 창밖 풍경은 점점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갔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시골길을 걷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시절의 정겨움과 닮은, 소박하지만 깊은 맛을 찾아 옥천 구읍으로 향했다. 종착지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구읍할매묵집’이었다.

가게 앞에 다다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바탕에 큼지막하게 쓰인 ‘구읍할매묵집’이라는 글씨는 마치 고향집에 온 듯한 푸근함을 안겨주었다. 간판 옆에는 희미하게 바랜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그마저도 정겹게 느껴졌다. 50년 전통의 손맛이라는 문구가 왠지 모를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구읍할매묵집 간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구읍할매묵집’의 간판. 50년 전통의 손맛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테이블 몇 개가 놓인 아담한 공간은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 착한 식당으로 선정되었다는 인증서가 붙어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직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메뉴판은 단출했다. 도토리묵(냉, 온), 도토리골패묵, 도토리전, 그리고 겨울철에는 메밀묵과 메밀골패묵을 판매하고 있었다. 묵에는 역시 막걸리라는 생각에, 시골 정통 막걸리도 한 병 주문했다. 메뉴판 옆에는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소소한 미소를 짓게 했다.

구읍할매묵집 메뉴
단출하지만 정겨운 메뉴. 묵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막걸리도 준비되어 있다.

잠시 후, 정갈한 상차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묵밥과 함께 붉은 동치미, 깻잎절임, 그리고 고추가 기본 반찬으로 나왔다. 묵밥 위에는 김가루, 참깨, 배추김치, 참기름 등이 푸짐하게 올려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먼저 묵밥 국물부터 한 모금 맛보았다. 멸치와 다시를 우려낸 동치미 육수는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을 냈다. 인위적인 단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깔끔하고 건강한 맛이었다. 슴슴한 듯하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오묘한 매력이 있었다.

도토리묵은 기대 이상이었다. 쌉쌀한 맛은 전혀 없고, 부드럽고 담백했다. 마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직접 쑤어주시던 묵과 맛이 흡사했다. 탱글탱글한 식감 또한 일품이었다. 젓가락으로 묵을 집어 올릴 때마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묵밥과 기본찬
정갈하게 차려진 묵밥과 기본찬. 붉은 동치미와 깻잎절임이 입맛을 돋운다.

밥은 묵밥에 말아져 나오지 않기 때문에, 따로 추가해야 한다. 따뜻한 밥을 묵밥에 넣어 슥슥 비벼 먹으니, 그 맛이 더욱 깊어졌다. 김치와 깻잎을 곁들여 먹으니, 다채로운 식감과 풍미를 즐길 수 있었다. 특히, 깻잎의 향긋한 향이 묵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려 주었다.

함께 나온 동치미는 시원하고 깔끔했다. 톡 쏘는 듯한 청량감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었다. 묵밥을 먹다가 중간중간 동치미를 마시니, 느끼함은 사라지고 입안은 상쾌함으로 가득 찼다. 동치미에 묵을 넣어 먹으니, 또 다른 별미였다.

고추는 매콤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좋았다. 풋고추를 삭혀 만든 고추지는, 씹을수록 깊은 맛이 느껴졌다. 묵밥과 함께 먹으니, 매콤한 맛이 느끼함을 잡아주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도토리전도 빼놓을 수 없었다. 얇게 부쳐진 도토리전은 쫄깃하면서도 고소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식감을 자랑했다. 도토리전에 간장절인 깻잎을 싸서 먹으니, 깻잎의 향긋함과 짭짤함이 도토리전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도토리전
쫄깃하고 고소한 도토리전. 깻잎 장아찌에 싸 먹으면 더욱 맛있다.

막걸리는 직접 양조장에서 받아온다고 했다. 톡 쏘는 탄산과 은은한 단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묵과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했다.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니, 묵의 풍미가 더욱 깊게 느껴지는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배가 든든했다. 자극적인 맛은 전혀 없었지만, 속은 편안하고 기분은 좋았다. 마치 어머니가 해주신 집밥을 먹은 듯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로 향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셨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눈빛에서, 오랜 세월 동안 묵집을 운영해온 자부심이 느껴졌다.

구읍할매묵집은 1946년에 개점하여 3대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 할머니께서 뒷산에서 도토리와 상수리열매를 주워 묵을 쑤어 팔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묵을 쑬 때 앙금을 수없이 치대고 가라앉혀 떫은맛을 제거한다고 한다. 또한, 묵을 끓일 때 가마솥을 사용하여 맛을 더욱 좋게 한다고 한다. 도토리와 상수리열매는 국내산만 사용한다고 하니, 믿고 먹을 수 있다.

묵과 반찬
정갈하게 담겨 나온 묵과 반찬들. 소박하지만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구읍할매묵집은 육영수 여사의 생가 근처에 위치해 있다. 식사를 마치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방문하여 잠시 산책을 즐겼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옥천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싱그러운 녹음과 맑은 공기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구읍할매묵집에서 맛본 묵밥은,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닌,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자극적인 음식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구읍할매묵집은 소박하지만 건강한 맛을 선사하는 옥천 맛집이다. 70년 전통의 깊은 맛과 따뜻한 정을 느끼고 싶다면, 옥천 구읍할매묵집을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분명 잊지 못할 맛집의 추억을 지역의 향기와 함께 마음속 깊이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구읍할매묵집 외부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구읍할매묵집의 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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