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간지럽히는 짭짤한 바다 내음과 훈훈한 인파의 열기가 뒤섞인 부산역 앞. 촌놈 기질 발휘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 무리에서 이탈, 미지의 미각을 찾아 차이나타운 언덕길을 올랐다. 오늘 나의 실험 대상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 평산옥이다. 돼지 수육과 국수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조합으로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이곳의 생존 비결을 파헤쳐 볼 요량이다.
좁다란 골목길, 허름한 간판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4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외관에서 풍겨져 나오는 아우라.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곳이 바로 평산옥이다. 문을 열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돼지 육수 특유의 쿰쿰한 향이 폐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마치 발효식품 숙성고에 들어선 듯한 기분.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은 볼 것도 없이 수육 1인분과 따뜻한 국수를 주문했다. 이곳의 메뉴는 단촐하다. 수육, 국수, 그리고 열무국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맛의 정점을 찍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잠시 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수육 한 접시와 소담한 국수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수육은 삼겹살과 앞다리살 부위가 섞여 나오는데, 갓 삶아져 촉촉함을 머금은 모습이 보기만 해도 군침을 삼키게 한다. 1인당 제공되는 수육의 양은 혼자 술 한잔 기울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가장 먼저 수육 한 점을 집어 들었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은은한 육향만이 코끝을 맴돌았다. 콜라겐과 엘라스틴이 풍부한 껍데기 부분은 쫀득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혔고, 살코기 부분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마이야르 반응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70~80℃ 사이의 최적 온도에서 삶아낸 듯, 완벽한 부드러움을 자랑했다. 마치 저온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듯한 식감이다.
수육과 함께 제공되는 곁들임 찬들은 수육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반건조 무말랭이. 꼬들꼬들한 식감과 매콤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수육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동시에 입맛을 돋우는 데 효과적이다. 쌈장 대신 제공되는 특제 소스 또한 인상적이다. 간장 베이스에 식초와 설탕, 그리고 약간의 겨자를 첨가한 듯한 이 소스는, 새콤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수육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마치 분자 요리에서나 볼 법한 혁신적인 조합이다.

다음은 따뜻한 국수 차례. 멸치 육수를 베이스로 한 맑은 국물에 소면이 말아져 나오고, 그 위에 김가루와 송송 썬 파가 얹어져 나온다. 국물 한 모금을 들이켜 보니, 멸치 특유의 감칠맛과 시원함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MSG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듯,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인상적이다. 글루탐산나트륨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입맛에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 은은한 맛이 좋았다.
면발은 쫄깃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오히려 부드럽게 끊어지는 식감이 국물과 잘 어울렸다. 마치 섬유질이 풍부한 해초류를 먹는 듯한 느낌이랄까. 면을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고, 그 위에 수육 한 점을 얹어 먹으니, 비로소 평산옥의 완벽한 조합이 완성되었다. 담백한 수육과 시원한 국물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환상의 앙상블을 이뤄냈다.
이곳의 국수는 돼지 육수 베이스라고 한다. 돼지국밥이나 제주도 고기국수, 일본의 돈코츠 라멘과는 전혀 다른, 맑고 깔끔한 육수가 특징이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정구지무침(부추무침)과 멸치젓을 넣어 취향껏 간을 맞춰 먹으면 된다. 마치 pH 농도 조절 실험을 하는 과학자처럼, 나만의 최적의 맛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육과 국수를 번갈아 가며 먹다 보니, 자연스레 술 생각이 났다. 부산에 왔으니 대선을 마셔볼까 하다가, 오늘은 왠지 맥주가 더 땡겼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니, 텁텁했던 입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역시 수육에는 소주보다는 맥주가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알코올이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특유의 쌉쌀한 맛이, 수육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평산옥의 또 다른 매력은 착한 가격이다. 수육 1인분에 1만원, 국수는 3천원.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 가격으로 든든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격을 동결해온 것은 아닐 테지만, 분명 합리적인 가격임에는 틀림없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식당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칭찬부터 하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벽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수육 1인 1접시 부탁드려요”. 얼핏 보면 강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을 듯하다. 아마도 수육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모든 손님들에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이 아닐까.
실제로 이곳에서는 1인 1수육 주문이 필수다. 혼자 방문하더라도 예외는 없다.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막상 수육을 맛보면, 1인 1수육 정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만큼 수육의 맛이 훌륭하고, 양 또한 적당하기 때문이다. 추가로 면 요리를 시켜 술과 함께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평산옥은 분명 화려하거나 세련된 맛집은 아니다. 하지만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는 맛과 정겨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부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온 진정한 의미의 노포다. 마치 잘 숙성된 김치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게 내부는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고풍스럽다. 낡은 나무 테이블과 의자, 빛바랜 벽지, 그리고 4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낡은 거울까지. 모든 것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벽에 걸려 있는 흑백 사진들은, 평산옥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듯하다. 마치 박물관에 온 듯한 기분으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 내부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평산옥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이니 참고해야 한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는 웨이팅이 발생할 수 있으니, 가급적 시간을 피해서 방문하는 것이 좋다. 주차 공간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인근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총평하자면, 평산옥은 부산역 인근에서 가볍게 식사나 반주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담 없이 들러 맛있는 수육과 국수를 맛볼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다. 다음 부산 출장 때도, 어김없이 평산옥에 들러 수육 한 접시에 맥주 한 잔을 기울일 것 같다. 그때는 열무국수에도 도전해봐야겠다. 캡사이신이 TRPV1 수용체를 자극하여 통증과 쾌감을 동시에 유발하는, 그 매콤한 맛을 느껴보고 싶다.
평산옥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평산옥의 생존 비결을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것은 변함없는 맛과 착한 가격,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 이 세 가지 요소의 완벽한 조화가 아닐까. 마치 DNA 이중 나선 구조처럼,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얽히고설키며, 평산옥이라는 독특한 맛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평산옥에서 먹었던 수육의 맛을 곱씹었다. 부드러운 식감, 은은한 육향, 그리고 새콤달콤한 소스. 마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처럼, 완벽한 맛의 향연이었다. 다음에는 꼭 여자친구와 함께 방문해서, 이 맛있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그때는 꼭 대선 소주를 시켜서, 부산의 밤을 만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