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제법 차가워진 어느 가을날, 백운호수의 잔잔한 수면 위로 비치는 노을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그저 이 계절의 낭만을 만끽하고 싶어 찾은 곳이었지만, 이내 예상치 못한 황홀경으로 나를 이끌었다. 호숫가,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발견한 작은 이정표 하나. ‘이자카야 유미’. 낯선 이름이었지만, 왠지 모를 끌림에 이끌려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코를 간지럽히는 은은한 숯불 향과 함께, 따뜻한 노란 조명이 공간을 부드럽게 감쌌다. 빈티지한 목재 인테리어와 벽면을 가득 채운 다채로운 술병들은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1인용 좌석부터 4인석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고 여유로운 공간 배치는 이 곳이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편안한 식사와 대화를 위한 공간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 백운호수에 나들이를 나왔다가 우연히 들르게 된 것이었다. 날씨도 좋았고,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다녔기에 잠시 들러 시원한 맥주 한 잔과 꼬치 몇 개로 허기를 달랠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인상부터 ‘이건 평범한 곳이 아니구나’ 하는 직감이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마치 서울의 핫플레이스인 한남동이나 경리단길의 트렌디한 이자카야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분위기였다.
메뉴판을 받아 들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모듬 꼬치’였다. 사진만으로도 군침이 돌았지만, 어떤 꼬치들이 나올지 기대하며 주문을 했다. 곧이어 등장한 것은, 숯불 향을 머금은 다양한 종류의 꼬치들이었다. 닭다리살, 닭날개, 베이컨 말이, 새우, 가지, 은행 등 쉴 새 없이 입안으로 사라지는 꼬치들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짭조름하면서도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베이컨 말이 꼬치와, 숯불 향이 제대로 배어 촉촉했던 닭다리살 꼬치는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단순히 꼬치에만 감탄하고 끝낼 줄 알았는데, 함께 주문했던 바지락술찜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큼지막한 바지락들이 가득 담긴 찜 요리는 뽀얀 국물과 어우러져 깊고 시원한 맛을 자랑했다. 국물 한 숟가락을 뜨는 순간, 짭짤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해장의 느낌마저 선사했다. 맥주 한잔에 꼬치 하나로 끝내려 했던 계획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꼬치와 술찜, 그리고 곁들임 메뉴까지, 어느 하나 맛없는 것이 없었다.
함께 온 일행이 주문했던 ‘한우모츠항정나베’도 맛을 보았다. 낯선 이름이었지만, 부드러운 소 내장과 쫄깃한 항정살이 어우러진 나베는 기대 이상의 풍미를 자랑했다. 진한 국물과 부드러운 식감의 조화는 마치 고급 요리를 먹는 듯한 만족감을 주었다. 특히, 아이들까지 맛있게 먹을 정도였다니, 이 집의 메뉴 개발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새로운 메뉴에 대한 도전이 실패한 적이 없다는 리뷰들이 괜히 많았던 것이 아니었다. ‘특별한 메뉴가 있다’는 키워드에 52명이나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이자카야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창의적이면서도 맛있는 메뉴들이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칠리크림파스탕’이라는 메뉴도 그랬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그 부드러운 크림소스와 매콤한 칠리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쫄깃한 면발과 푸짐한 해산물이 어우러져, 파스타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이곳의 분위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인테리어가 멋지다’는 평이 109명이나 나올 정도로, 유미는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선사했다. 은은한 조명, 나무 소재의 인테리어, 그리고 센스 있게 배치된 소품들은 아늑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특히, 술병들이 빼곡하게 진열된 바 테이블 쪽은 이자카야 특유의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더욱이 감동적이었던 것은, 직원분들의 친절함이었다. ‘친절하다’는 키워드에 95명이나 공감한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주문을 받는 순간부터 음식을 내어주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모든 과정에서 진심 어린 미소와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사장님께서도 젊으시고 유쾌하셔서, 마치 단골 집에 온 듯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방문한 날, 과일 서비스를 챙겨주시는 따뜻함에 마음이 놓였고,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재료가 신선하다’는 점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을 듯했다. 사시미 한 점을 맛보는 순간, 그 신선함이 입안 가득 퍼지며 풍미를 더했다. 깨끗한 얼음 위에 정갈하게 플레이팅 된 모듬 사시미는 보기에도 좋았고, 맛도 훌륭했다. 제주 딱새우는 달콤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친구들과의 번개 모임, 연인과의 데이트, 가족과의 외식까지, 이곳은 어떤 모임에도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단체 모임하기 너무 좋다’는 평처럼, 넓고 쾌적한 공간은 여럿이서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술 없이도 안주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유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샐러드와 함께 나온 미니 모찌리도후는 귀여운 플레이팅과 함께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단짠의 매력으로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만족시켰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모든 메뉴를 섭렵하고 배를 두드리며 가게를 나설 때, 이미 마음속에는 ‘다음 방문’에 대한 약속이 굳게 새겨져 있었다. 이토록 완벽한 음식과 분위기, 그리고 따뜻한 서비스를 갖춘 곳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울 정도였다. 백운호수 근처에서 인생 이자카야를 만난 기쁨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유미’는 단순한 맛집을 넘어,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다음번에는 어떤 새로운 메뉴를 맛보게 될지, 또 어떤 즐거운 추억을 만들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백운호수에서의 짧은 나들이가 이렇게 잊지 못할 맛과 추억으로 가득 채워질 줄이야.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들어왔던 이곳이,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보석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