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안양 댕리단길을 찾았다. 요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사실 내 발길이 주로 닿는 곳은 늘 정해져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로컬 맛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곳, ‘얼굴말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가격, 맛, 양 모두 최고’라는 솔직한 후기들이 눈에 띄었고, 특히 10가지가 넘는 푸짐한 백반 구성과 몇십 년 만에 맛보는 듯한 제대로 된 오징어볶음에 대한 칭찬은 나를 이곳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과연 소문대로인지, 기대감을 안고 문을 열어본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따뜻한 조명과 편안한 분위기는 마치 오래된 동네의 단골집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큼직한 간판보다는 정겨운 느낌의 외관이 인상적이었는데, 겉에서 보아도 실내가 꽤 아늑해 보였다. 낡았지만 정돈된 느낌의 목재 가구와 은은한 조명이 편안함을 더했고, 벽에 걸린 오래된 액자들은 이곳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거쳐왔음을 짐작게 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 백반에 함께 나오는 반찬들이었다. 평범한 백반집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10가지가 넘는 가짓수의 반찬들이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멸치볶음, 땅콩조림, 김치, 나물 무침, 장아찌 등 하나하나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이 식탁을 빈틈없이 채웠다. 갓 지은 듯 따뜻한 밥과 함께 나온 된장찌개, 그리고 메인 메뉴를 주문하기도 전에 이미 풍성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김치찌개의 모습이었다. 뚝배기 가득 붉은 빛깔의 국물 위로 푸짐하게 썰어 넣은 돼지고기와 두부가 먹음직스럽게 올라와 있었다. 갓 조리되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찌개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옆 테이블에서 나온 청국장 역시 진하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다른 이들의 밥맛을 돋우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청국장과 제육정식을 최고로 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드디어 메인 메뉴인 오징어볶음이 나왔다. 맵기 정도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너무 맵지 않은 적당한 매콤함을 부탁드렸다. 커다란 뚝배기에 담겨 나온 오징어볶음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비주얼이었다. 싱싱해 보이는 오징어와 아삭한 야채들이 붉은 양념과 어우러져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밥 한 공기에 오징어볶음을 쓱쓱 비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곁들여 나온 김과 함께 싸 먹어도 별미일 것 같았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종종 주변 학교 운동부 학생들이 단체 식사를 하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곳일수록 든든하고 맛있는 한 끼를 책임져 줄 거라는 믿음이 생기는데, 이 식당이 바로 그런 곳이라는 증거 같았다. ‘매일 중심상업지역만 돌아다니며 먹을 게 없다고 투덜거렸던 게 후회된다’는 한 방문객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오징어볶음을 한 숟가락 떠서 맛보니, 몇십 년 만에 제대로 된 맛을 느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너무 달거나 짜지 않으면서도 매콤달콤한 양념이 오징어의 감칠맛을 한껏 살려주었다. 씹을수록 쫄깃한 오징어와 아삭하게 씹히는 채소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밥에 비벼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밥도둑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함께 나온 다른 반찬들도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졌다. 짭조름한 멸치볶음, 고소한 땅콩조림, 그리고 새콤달콤한 김치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메인 메뉴의 맛을 돋워주는 훌륭한 조력자들이었다.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명이서 18,000원에 이렇게 푸짐하고 맛있는 한 끼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가성비라는 단어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식당이 또 있을까 싶다.
사실 백반집이라고 하면 보통 획일적인 맛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곳은 반찬 하나하나에서도 사장님의 손맛이 느껴졌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비법이 궁금해졌다. 특히 찌개류는 끓일수록 더 깊은 맛을 내는 것 같았다. 밥과 함께 밥그릇 가득 퍼서 먹어도 질리지 않고 계속 들어갔다.
이곳은 분명 ‘오징어볶음 맛집’으로도 불릴 만하지만, 10가지가 넘는 다채로운 반찬들이 함께 나오는 ‘백반 맛집’으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가족 외식이나 어르신들을 모시고 오는 자리에도 아주 적합할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밥 리필 시 추가 비용이 있는지 미리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워낙 푸짐하게 나오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한 공기로도 충분할 것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안양 댕리단길에서 기대 이상의 맛과 만족감을 선사한 ‘얼굴말식당’. 북적이는 핫플레이스 속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맛을 지켜온 이곳은, 자극적인 음식에 지친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든든함을 동시에 선사할 것이다. 특히 집밥처럼 정갈하고 푸짐한 한 끼를 원한다면, 혹은 제대로 된 오징어볶음을 맛보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방문해도 좋을 곳이다. 다음번에는 청국장이나 제육정식도 꼭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곳을 넘어,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주는 그런 식당이었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날, 찾아가면 좋을 그런 곳. 어쩌면 댕리단길에서 가장 ‘진짜’다운 맛집은 이런 곳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