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청에 볼일이 있어 나섰던 날,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 함양 시장 구경에 나섰지. 사람들 북적이는 시장 골목을 걷다 보니,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시장 다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 그러다 눈에 띈 곳이 바로 ‘병곡식당’이었어. 간판에 큼지막하게 적힌 ‘원조 피순대’ 글자가 어찌나 정겹던지. 70년 전통이라니, 그 세월만큼 깊은 맛이 있을 것 같아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지.
시장 안쪽 코너에 자리 잡은 병곡식당은 입구가 두 군데더라고. 나는 옆쪽 문으로 들어갔는데, 안쪽에 계시던 사장님이 처음엔 날 못 알아보시더라. “사장님, 여기요!” 하고 불렀더니, 그제야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어디서 왔능교?” 하고 푸근하게 물으시는데, 마치 오랜만에 고향집에 온 기분이었어.

가게 안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정겨운 분위기였어. 요즘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식당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지. 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테이블은 손님들로 북적였어. 혼자 온 손님, 친구와 함께 온 손님, 가족 단위 손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순대국밥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 메뉴판을 보니 순대국밥, 머리국밥, 피순대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는데, 나는 순대국밥이 먹고 싶어 왔으니 망설임 없이 순대국밥을 주문했어.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식당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을 구경했어. 옛날 사진부터 방송에 나왔던 모습까지, 병곡식당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지. 특히 눈에 띄는 건 MBC ‘오늘의 진단’에 맛집으로 소개됐던 사진이었어. 2007년 1월 5일이라 적혀있는 걸 보니, 꽤 오래전부터 유명했던 곳인가 봐. 사진 속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대국밥이 나왔어. 뚝배기 가득 담긴 국밥 위로 송송 썰린 파와 다진 양념이 듬뿍 올려져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싹 돌더라고. 뽀얀 국물에서는 깊고 진한 육향이 느껴졌어. 얼른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 입 맛보니, 아이고, 이 맛 좀 봐라! 진하면서도 담백한 국물이 속을 확 풀어주는 게, 정말 끝내주더라고.

국밥 안에는 순대와 각종 내장이 푸짐하게 들어있었어. 특히 순대가 아주 부드러웠는데, 알고 보니 선지가 들어간 피순대더라고. 입에서 스르륵 녹는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어. 돼지 냄새가 아주 살짝 나는 듯했지만, 나는 워낙 토속적인 입맛이라 그런지 전혀 거슬리지 않았어. 오히려 그 냄새가 더 구수하게 느껴지더라고. 혹시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어.
밥 한 숟갈 크게 떠서 국물에 푹 적셔, 잘 익은 깍두기 하나 올려 먹으니, 옛날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이야! 깍두기의 아삭한 식감과 시원한 맛이 국밥의 깊은 맛과 어우러져 정말 환상적인 맛을 내더라고. 반찬은 셀프 코너에서 자유롭게 가져다 먹을 수 있었는데, 깍두기뿐만 아니라 김치, 양파, 고추 등 다양한 반찬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좋았어. 인심 좋게 쌓아놓은 밥도 무료로 더 먹을 수 있다니, 사장님의 푸근한 인심에 다시 한번 감동했지.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은 모둠 순대를 시켜 드시던데,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특히 촉촉해 보이는 피순대가 눈에 아른거렸어. 다음에는 꼭 모둠 순대를 시켜서 피순대를 제대로 맛봐야겠다고 다짐했지.

순대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니, 배도 부르고 마음도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어.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사장님께서 “다음에 또 오이소!”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에 또 한 번 감동했지. 정말, 한 숟갈 뜨면 고향 생각나는 맛이었어.
병곡식당은 지리산함양시장 안에 72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포래. 원래는 할머니께서 함양군 병곡면에서 오셔서 식당을 시작하셨다고 해. 지금은 아드님이 운영하고 계신다는데, 옛날 맛 그대로 지켜가려고 노력하신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

물론, 아쉬운 점도 아주 조금은 있었어. 어떤 사람들은 돼지 냄새가 난다고 하기도 하고, 파리가 좀 많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 그리고 옛날에 비해서 맛이 조금 변했다는 단골손님들의 이야기도 들려. 하지만 나는 그런 소소한 부분들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어. 오히려 그런 점들이 시골 식당의 정겨운 분위기를 더해주는 것 같았거든.
함양에 가면 꼭 한번 들러봐야 할 맛집, 병곡식당! 푸근한 인심과 깊은 맛이 있는 곳에서, 따뜻한 순대국밥 한 그릇 드셔보시는 건 어떠세요? 분명 속이 다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다음번에는 꼭 모둠 순대에 동동주 한 잔 기울여봐야겠어. 아, 동동주는 상한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혹시 드실 분들은 주의해서 드시길 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