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은 내게 늘 미지의 영역이었다. 속초는 자주 갔지만, 그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나타나는 이 해안 도시에는 어쩐지 발길이 잘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속초 여행은 달랐다. 며칠 전부터 뇌리에 박힌 물회, 그 강렬한 새콤함과 매콤함의 콜라보를 찾아 나선 여정이었으니까. 인터넷 검색 엔진은 연신 “고성 물회 맛집”을 외쳐댔고, 알고리즘은 마침내 한 곳을 가리켰다. 그래, 오늘은 ‘광범이네횟집’에서 물회에 대한 나의 오랜 가설을 검증하는 날이다.
연구자의 마음으로, 마치 새로운 학설을 탐구하는 심정으로 차를 몰았다. 네비게이션은 꼬불꼬불한 해안 도로를 안내했고, 창밖으로는 쪽빛 동해 바다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파도 소리는 마치 실험실의 백색 소음처럼 묘하게 긴장을 풀어주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글씨로 “물회 전문”이라고 적힌 간판은 마치 논문의 제목처럼 간결하고 명확했다. 가게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차량들이 이곳이 숨겨진 맛집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보다 넓고 깔끔한 홀이 나타났다. 테이블마다 하얀 비닐 식탁보가 깔려 있었고, 정돈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꽤 많았다. 가족 단위 손님부터 등산객으로 보이는 무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물회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물회와 회덮밥, 그리고 매운탕이 주력 메뉴인 듯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물회를 주문했다. 이 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렸던가.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회가 테이블에 놓였다. 붉은색 육수가 담긴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 위로 가자미 회와 오이, 그리고 얇게 썬 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맨 위에는 앙증맞은 해삼 몇 점이 올려져 있었다. 마치 잘 설계된 분자 요리처럼, 색감의 조화가 훌륭했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침샘은 쉴 새 없이 자극받았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육수와 재료들을 섞었다. 차가운 온도가 손끝에서부터 느껴졌다. 드디어 첫 입. 새콤하면서도 매콤한, 그리고 달콤한 맛이 혀를 강타했다. 캡사이신이 TRPV1 수용체를 자극하여 통증과 쾌감을 동시에 유발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동시에, 신선한 가자미의 감칠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뼈째 썰어낸 세꼬시 특유의 꼬득꼬득한 식감은 씹는 재미를 더했다. 오이는 아삭아삭했고, 배는 시원하고 달콤했다.
육수는 단순히 자극적인 맛이 아니었다. 깊고 풍부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아마도 L-글루타메이트와 IMP(이노신산)의 시너지 효과 덕분이리라. 멸치, 다시마, 새우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오랜 시간 끓여낸 육수일 것이다. 숙성의 과정을 거쳤는지, 은은한 발효 향도 느껴졌다. 32년 내공이 느껴지는 비법 육수였다. 마치 과학 실험의 결과처럼, 완벽한 맛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물회 안에는 소면도 숨어 있었다. 육수에 적셔진 소면은 부드럽고 쫄깃했다. 탄수화물이 당으로 분해되면서, 달콤한 맛이 더욱 강렬해졌다. 면을 추가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아직 밥이 남아 있었으니까.

공깃밥을 물회에 투하했다. 차가운 육수와 따뜻한 밥의 만남. 온도의 부조화는 오히려 새로운 차원의 맛을 창조했다. 밥알은 육수를 흡수하여 촉촉해졌고,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왔다. 가자미 회와 함께 밥을 떠먹으니, 마치 고급 스시를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완벽한 조합. 뇌는 행복 물질을 쉴 새 없이 뿜어냈다.
곁들여 나오는 반찬들도 훌륭했다. 특히 고구마 맛탕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160도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겉면에 갈색 크러스트가 형성된 덕분이리라. 달콤한 맛은 매운 물회를 먹는 중간중간 입안을 진정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미역국은 시원하고 깔끔했다. 다시마와 멸치로 우려낸 육수는 깊은 감칠맛을 자랑했다.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느껴지는 메뉴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 홀 직원분의 친절한 서비스도 인상적이었다. 리필을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국수를 가져다주셨고, 부족한 반찬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셨다. 덕분에 더욱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어느덧 그릇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마지막 남은 육수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들이켰다. 위장은 포만감으로 가득 찼고, 뇌는 행복감으로 마비될 지경이었다. 마치 실험의 성공을 자축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조용히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섰다.
광범이네횟집. 이곳은 단순한 고성의 맛집이 아니었다. 32년의 역사와 장인의 손길이 깃든, 물회의 성지였다. 새콤, 매콤, 달콤, 그리고 감칠맛의 완벽한 조화는 내 미각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물회에 대한 나의 오랜 가설은 완벽하게 입증되었다. 이곳의 물회는 과학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도 완벽했다. 다음에 또 고성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는 회덮밥에도 도전해봐야겠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주차장 한켠에 자리잡은 벌집이었다. 벌에 쏘였다는 리뷰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방문했는데, 다행히 나는 벌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방문객들을 위해서라도, 벌집 제거는 시급해 보인다. 안전 문제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이곳은 더욱 완벽한 맛집으로 거듭날 것이다.
가게를 나서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입안에는 아직도 물회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차에 올라 속초로 향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고성에 묶여 있었다. 조만간 다시 방문하여, 이번에는 특 물회에 도전하리라 다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