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하루의 끝자락, 휘몰아치는 세상의 소음에서 잠시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는 묵묵히 책장을 넘기거나, 누군가는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겠지만, 나는 종종 그럴 때면 작은 술집의 문을 두드린다. 처음부터 ‘혼술’을 염두에 두고 찾은 곳은 아니었다. 다만, 낯선 시선에 민감한 나에게는 자신만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수많은 밤의 망설임 끝에 ‘로만’이라는 이자카야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은 결코 고요하거나 인적이 드문 곳은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홀로 온 나를 향한 부담스러운 시선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직원분들은 나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면서도, 나의 혼술 타임에 넉넉한 여유를 내어주신다. 마치 나만의 작은 세계가 펼쳐지는 듯한 편안함. 이전 동네에서는 이런 공간을 찾지 못해 밤의 적막을 홀로 삼켰던 날들이 많았기에, 도청 근처에 터전을 잡은 이후로는 늘 로만의 불빛을 그리워하며 이곳을 찾게 되었다.

로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짙은 나무 향과 함께 은은한 조명이 나를 감싼다. 외벽을 가득 채운 일본식 포스터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듯한 간판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마치 좁은 골목길의 작은 식당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안으로 들어서자, 짙은 나무 질감의 인테리어와 아늑한 조명이 어우러져 편안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적당한 거리감이 유지되어 더욱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주는 듯하다. 벽면을 가득 채운 일본 애니메이션 포스터와 독특한 디자인의 조명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곳의 좌석 배치는 참으로 기묘하면서도 매력적이다. 2인용 테이블과 4인용 테이블이 엇갈리듯 배치되어 있고, 푹신한 소파 좌석과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조화롭게 놓여 있다. 벽을 따라 늘어선 칸막이석은 마치 나만을 위한 작은 방처럼 느껴져, 홀로 온 손님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왁자지껄한 소음 대신, 잔잔하게 흐르는 일본 음악과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메뉴판을 펼쳤다. 빽빽하게 채워진 글씨들은 마치 작은 보물지도 같았다. 닭 요리부터 시작해 사시미, 요리류까지, 다양한 메뉴들이 나를 유혹했다. 꼼꼼하게 둘러보다가, 문득 떠오른 나의 오랜 갈증에 시선을 멈추었다. 로만의 시그니처 메뉴이자, 혼자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메뉴.

이날 나의 선택은 짙은 붉은 빛깔이 인상적인 ‘로만 모둠 숙성 스지’. 묵직한 검은 접시 위에 마치 예술 작품처럼 펼쳐진 육회는 그 자체로 시각적인 황홀경을 선사했다. 얇게 저며진 고기 한 점 한 점마다 섬세한 칼집이 들어가 있어, 씹을수록 부드러운 식감과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안겨주었다.


가운데 놓인 얇게 썬 생강과 톡 쏘는 맛의 양념장은 육회의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려 줄 터였다. 젓가락으로 육회 한 점을 집어 살짝 양념장에 찍어 입안 가득 넣었다. 혀끝에 닿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부드러움과 신선함.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한 맛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냈다. 마치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이 감칠맛. 여기에 톡 쏘는 생강의 알싸함이 더해지니, 텁텁함은 사라지고 기분 좋은 개운함만이 남았다. 곁들임으로 나온 다진 마늘과 쌈장 소스 역시 신선한 육회와 놀라운 조화를 이루었다. 씹을수록 고소함이 배가되는 매력적인 맛.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붉은 육회 뒤편으로는, 마치 겨울의 찬 기운을 머금은 듯 싱그러운 새싹 채소가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신선함이 육회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비결이리라.

이날 나의 미식 탐험은 로만 모둠 숙성 스지에만 머물지 않았다. 다음으로 만난 것은 마치 진주를 꿰어 놓은 듯한 아름다운 빛깔의 ‘모둠 사시미’. 뽀얀 광어와 영롱한 주황빛 연어, 그리고 신선함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다른 흰살 생선들까지. 각각의 생선들은 저마다의 매력적인 빛깔과 질감으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꼬치구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메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익혀진 닭꼬치와, 씹을수록 풍미가 살아나는 돼지고기 꼬치 등. 맥주 한 모금과 함께 곁들이면 그 맛은 배가 된다. 곁들임으로 나온 신선한 오이는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었고, 매콤한 양념은 꼬치의 풍미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맛있는 음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짙은 나무와 은은한 조명이 만들어내는 아늑한 분위기는 마치 시간을 잊게 만든다. 조용한 음악 소리와 잔잔한 대화 소리가 어우러져 편안함을 선사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얇게 썬 생강과 함께 제공되었던 ‘로만 숙성 스지’였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 그리고 깊고 풍부한 육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잊을 수 없는 맛의 경험을 선사했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를 맛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곁들여 나온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소스는 스지의 풍미를 더욱 극대화시켰고, 씹을수록 고소함이 배가 되었다.
이곳 로만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공간을 넘어, 나에게 작은 위로와 쉼을 선사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맛있는 음식과 술로 하루의 고단함을 녹여낼 수 있는 곳. 낯선 시선에 대한 부담 없이,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경북도청 근처에서 나만의 아늑한 공간을 찾는다면, 로만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이곳에서라면 당신도 분명,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깊고 풍성한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짙은 나무 향과 함께, 따뜻한 조명 아래, 맛있는 음식과 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희망분식’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간판이 보인다. 로만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다음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들러보고 싶은 곳이었다. 낯선 이름 속에서 어떤 맛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로만에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텅 빈 술잔과 함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잔잔한 행복감을 안고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또 다른 밤, 또 다른 위로가 필요할 때, 나는 분명 이곳 로만을 다시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