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따스한 햇살이 그리워 나선 길, 문득 발길이 닿은 곳은 산본의 정겨운 골목길이었다. 왁자지껄함보다는 차분함이 감도는 이곳에 자리한 한 식당은, 나무로 만들어진 간판부터 예스러운 멋을 풍겼다. ‘도토리전 전문 음식점’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간판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나를 맞이하는 듯했다. 왠지 모를 설렘을 안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내부는 편안하고 정갈했다. 나무 소재의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은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더했다. 벽면에는 이곳의 메뉴와 가격을 안내하는 안내문들이 붙어 있었다. 복잡하지 않고 정돈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주문을 위해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샤브샤브는 가격 대비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도토리전, 도토리묵, 칼국수, 그리고 들깨죽까지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구성에 2만 원이라는 가격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양이 푸짐하다는 정보를 미리 얻었기에, 묵이나 전 중에 하나만 선택해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샤브샤브를 주문했다. 곧이어 테이블 위에는 신선한 채소와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차려졌다. 맑고 투명한 육수 냄비 위에는 배추, 청경채, 버섯, 팽이버섯, 그리고 늙은 호박까지 다양한 종류의 채소가 보기 좋게 담겨 있었다. 특히 가운데 놓인 배추는 꽃처럼 활짝 피어 있었고, 그 위에는 붉은 양념장이 앙증맞게 올라가 있었다. 얇게 썰린 고기 접시는 마치 붉은 장미꽃처럼 곱게 말려져 있었다.


얇게 썬 소고기를 뜨거운 육수에 살짝 데쳐 맛보니, 입안 가득 퍼지는 부드러움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고기 자체의 질감이 조금 퍽퍽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물론 신선한 채소들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었지만, 고기만 좀 더 부드러웠다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뒤이어 나온 도토리묵은 쫄깃한 식감이 인상 깊었다. 도토리로 만든 피는 씹을수록 고소한 풍미를 자랑했고, 함께 곁들여진 상큼한 양념장은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곁들임으로 나온 피클도 개운한 맛이 별미였다.

식사가 계속되는 동안, 별도로 주문했던 도토리전이 등장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노릇노릇한 비주얼이었다. 얇지만 속은 꽉 찬, 새우와 각종 채소가 어우러진 전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 전을 맛보고 나니, 왜 이곳이 ‘도토리전 전문 음식점’이라 불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다양한 밑반찬이었다. 김치, 콩나물무침, 그리고 알 수 없는 향긋한 나물까지, 정갈하게 담겨 나온 밑반찬들은 음식의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특히 붉은 양념이 인상적인 김치는 매콤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져 밥과 함께 먹기에도 좋았다.
샤브샤브를 어느 정도 즐기고 나니, 곧이어 칼국수가 나왔다. 쫄깃한 면발과 함께 진한 국물이 어우러져 추운 날씨에 더욱 제격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들깨죽은 고소함의 끝판왕이었다. 부드러운 식감과 깊은 풍미는 식사의 마무리를 완벽하게 장식했다.
이곳에서는 샤브샤브 외에도 제육 산채 밥상이라는 메뉴도 맛볼 수 있었다. 함께 나온 된장찌개는 무난한 맛이었지만, 제육볶음은 양념 맛이 정말 훌륭했다. 하지만 샤브샤브 고기와 마찬가지로, 제육볶음 역시 고기의 질이 양념의 맛을 따라오지 못하는 듯한 아쉬움이 남았다. 만약 가격을 조금 더 올리더라도 질 좋은 고기를 사용한다면, 제육볶음은 이 근처에서 당할 집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이 식당은 푸짐한 양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든든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특히 도토리전과 샤브샤브에 포함된 다양한 채소, 그리고 후식으로 나오는 칼국수와 들깨죽까지, 한 상 가득 차려지는 구성은 누구라도 만족할 만하다. 다소 아쉬운 고기 질감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가성비와 정갈한 분위기 덕분에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산본에서 든든하고 맛있는 식사를 원한다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