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나섰다.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이 펼쳐지는 여주 강천면, 그곳에 자리한 ‘먼동이 틀 때’라는 간판을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 이 식당은, 2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곳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이곳에는 손때 묻은 추억과 정겨움이 가득 묻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된 듯하면서도 정갈하게 관리된 내부는 따뜻한 레트로 감성으로 가득했다. 천장의 나무 서까래와 은은한 조명, 그리고 짙은 색감의 가구들은 마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세트장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자연광이 실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이곳이 ‘어머니가 사장님인 가족 식당’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접하고 왔다. 역시나, 따뜻하고 정감 가는 분위기 속에서 오랜 시간 한결같이 음식을 만들어 온 어머니의 손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테이블마다 놓인 작은 화분들은 공간에 생기를 더했고, 묵직한 원목 테이블은 깊이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았다. 메뉴는 복잡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었다. ‘백반’이 단연 눈에 띄었고, ‘돈까스’, ‘제육볶음’, ‘김치찌개’ 등 익숙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메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가정식 백반’은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처럼 느껴졌다.
이내 정성껏 차려진 백반 한 상이 나의 앞에 놓였다. 하얀 쌀밥과 함께 가지런히 담긴 8가지의 밑반찬들은 마치 ‘집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김치, 어묵볶음, 멸치볶음, 고사리나물, 두부조림, 총각김치, 그리고 제육볶음까지. 하나하나의 반찬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함께 나온 갓 지은 여주 진상미 쌀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밥알 하나하나가 찰지고 고슬고슬한 것이, 숟가락으로 밥을 뜨는 순간부터 이미 그 맛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뽀얀 쌀밥에 고추나물 무침을 얹어 한 입 떠 넣었다. 짜지도 맵지도 않은, 딱 알맞은 간에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나물의 신선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마치 내가 직접 밭에서 갓 따온 채소를 먹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김치찌개’였다. 뚝배기 가득 끓여져 나온 김치찌개는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어 더욱 먹음직스러웠다. 한 숟가락 떠먹으니, 깊고 칼칼한 국물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끓여주시던 그 구수하고 얼큰한 김치찌개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쌀밥 위에 얹어 먹으니, 느끼함은 싹 가시고 밥맛이 더욱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다른 메뉴들도 궁금해졌다. 특히 ‘치즈 돈까스’에 대한 기대가 컸다. 두툼한 고기 패티 안에서 흘러넘치는 고소한 치즈의 풍미를 상상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이윽고 등장한 치즈 돈까스는 겉은 바삭하게 튀겨졌고, 그 속에는 꽉 찬 치즈가 녹아 있었다. 뜨거울 때 한 입 베어 물자, 겉의 바삭함과 함께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하고 풍부한 치즈의 맛이 일품이었다. 흔히 맛볼 수 있는 돈까스와는 차원이 다른,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인상 깊었다.

이곳의 모든 재료는 직접 농사지은 신선한 채소들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반찬 하나하나에서 마치 갓 수확한 듯한 싱그러움과 건강한 맛이 느껴졌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은은하게 퍼지는 채소 본연의 맛은 진정한 ‘건강한 맛’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식사 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따로 카페를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다양한 음료와 커피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었다. 특히 3,0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의 ‘컵빙수’는 식사의 마지막을 달콤하게 장식해 주었다.
“가성비가 좋아요”, “친절해요”, “음식이 맛있어요” 라는 키워드들이 괜히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따뜻한 서비스, 그리고 편안한 분위기까지 모든 것을 갖춘 곳이었다. 23년 동안 한결같이 이곳을 지켜온 사장님의 넉넉한 인심과 정성스러운 손맛은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먼동이 틀 때’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정을 나누는 공간임을 느꼈다. 마치 오래된 친구 집에 들른 듯 편안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정을 쌓아가는 그런 곳. 여주 강천면에 들를 일이 있다면, 꼭 이곳에 들러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집밥 같은 음식을 맛보기를 추천한다. 틀림없이 당신의 마음에도 따뜻한 ‘먼동’이 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