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발걸음한 부산, 그중에서도 부산체고 바로 앞에 자리한 ‘와글와글’이라는 작은 가게는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낡은 듯 정겨운 외관은 촌스럽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잊고 있던 추억을 하나둘 불러오는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문 앞에 걸린 낡은 간판은 그 자체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었고, 왠지 모를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익숙한 냄새. 떡볶이와 라면, 그리고 마늘 냄새가 뒤섞여 마치 어린 시절 학교 앞 분식집을 떠올리게 했다. 벽면 가득 빼곡하게 붙어있는 알록달록한 쪽지들은 이곳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추억, 그리고 소망들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이곳이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쉼터이자 이야기가 모이는 곳처럼 느껴졌다. 낡은 벽지와 조명, 그리고 둥근 테이블들이 어우러져 ‘응답하라’ 시리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메뉴판을 훑어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라면밥볶이 세트’를 주문했다. 이 메뉴는 떡볶이와 라면, 밥, 그리고 순두부찌개가 함께 나오는 알찬 구성인데, 무엇보다 가격이 착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요즘처럼 물가가 치솟는 시대에 1인분도 아닌, 넉넉한 양을 단돈 만 원에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만원의 행복’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음료수 역시 1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곁들일 수 있었다.

주문 후 음식이 나오기까지, 벽에 붙은 쪽지들을 읽으며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웃음 가득한 사연, 또 누군가의 애틋한 고백, 그리고 엉뚱한 그림까지.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삶의 조각들이 마치 작은 보물처럼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사장님 적게 일하고 많이 파세요!”라는 훈훈한 응원의 메시지를 발견했을 때, 왠지 모를 따뜻함이 가슴을 채웠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라면밥볶이’가 나왔다. 커다란 팬 한가득, 빨간 양념 위에 꼬불꼬불한 라면 면발과 밥, 그리고 그 위를 덮은 수북한 김가루와 치즈가 먹음직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붉은 양념 속에서 앙증맞게 숨어있는 비엔나 소시지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숟가락으로 살짝 휘젓자, 따뜻한 마가린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 첫 입을 맛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이 딱 맞았다.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중독적인 맛이었다. 달콤함과 짭짤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고, 마가린 특유의 고소함이 풍미를 더했다. 쫄깃한 라면 면발과 꼬들한 밥알, 그리고 양념이 어우러져 씹는 재미까지 더했다. 듬뿍 올라간 김가루는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배가시켰고, 녹아내린 치즈는 부드러움을 더했다. 맵기 조절이 가능한 듯했으나, 이곳의 ‘아는 맛’은 맵기보다는 달큰함과 감칠맛에 집중되어 있었다. 간이 세지 않아 부담 없이 계속해서 숟가락이 향했다.

그 옆에는 뜨끈한 순두부찌개도 자리하고 있었다.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으며 올라오는 김이 군침을 돌게 했다. 숟가락으로 떠보니, 부드러운 순두부와 함께 매콤한 국물이 감칠맛을 더했다. 떡볶이와 라면으로 살짝 달콤하고 짭짤한 맛에 집중했다면, 순두부찌개는 시원하고 칼칼한 맛으로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찌개의 붉은 국물은 왠지 모르게 정감 있는 색감으로, 부산의 뜨거운 열정을 닮은 듯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애매한 시간이었고, 날씨마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늘 만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다른 날 방문하면 웨이팅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곳은 단순한 맛집을 넘어, 기다림의 가치를 충분히 하는 ‘분식 맛집’임에 틀림없었다. 떡볶이, 라면, 밥, 순두부찌개. 이 모든 것을 1인분씩 시키기에는 부담스럽고, 또 혼자서는 다 먹기 힘들 때가 많은데, 이곳은 그 모든 것을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사실, 처음 방문이라 다른 메뉴들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라면밥볶이’ 세트만으로도 이곳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달콤함과 고소함, 그리고 감칠맛이 어우러진 떡볶이와 라면밥의 조화는 잊을 수 없는 맛을 선사했다. 넉넉한 인심과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추억을 자극하는 분위기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와글와글’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따뜻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이곳에 다시 방문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분명, 또 다른 맛있는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