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그 이름만으로도 왠지 모를 시간 여행의 설렘이 느껴지는 도시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축물들을 지나, 나는 오늘 특별한 미식 실험을 위해 ‘愛Teum(애틈)’이라는 이자카야로 향했다. 낡은 건물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일본식 가옥의 외관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오묘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간판의 은은한 조명이 따뜻하게 나를 맞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시간의 흔적이 느껴졌다. 나무로 짜인 격자 천장과 은은한 조명이 만들어내는 아늑한 분위기는, 마치 일본의 어느 작은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벽 한쪽에는 다양한 사케 병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잔잔한 음악이 공간을 부드럽게 감쌌다. 습도는 50%, 온도는 24도. 쾌적한 환경이었다. 완벽한 실험 환경이 갖춰진 셈이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사시미, 스키야키, 후토마키 등 다양한 일식 요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메뉴 선택에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나는 이 집의 대표 메뉴라 할 수 있는 ‘사시미 모리아와세’와, 실험 정신을 발휘하여 ‘스키야키’를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전통주를 잔술로 판매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사시미 모리아와세’였다. 쟁반 위에 정갈하게 담긴 사시미들의 향연은 시각적인 아름다움마저 선사했다. 붉은 참치, 뽀얀 도미, 주황빛 연어, 윤기가 흐르는 고등어… 신선함이 눈으로도 느껴졌다. 마치 잘 조련된 실험 참가자들을 보는 듯했다.

젓가락을 들어 참치 한 점을 집어 들었다. 겉은 촉촉하고 속은 탄력 있는, 완벽한 숙성 상태였다. 입안에 넣자마자 느껴지는 깊은 감칠맛은 혀끝의 미뢰를 자극하며 뇌를 행복 물질로 가득 채웠다. 숙성 과정에서 생성된 이노신산 덕분일까? 서울의 유명 숙성 횟집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니, 오히려 더 훌륭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다음은 도미 차례. 쫄깃한 식감과 함께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은, 마치 섬세하게 조율된 오케스트라의 선율 같았다. 씹을수록 느껴지는 풍미는, 내가 지금껏 경험해 왔던 도미와는 차원이 달랐다. 활어회 특유의 신선함은 물론, 숙성 과정에서 얻어지는 복합적인 풍미까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연어는 또 어떠한가. 지방의 고소함과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특히, 숙성된 연어는 특유의 느끼함이 줄어들고 감칠맛이 더욱 깊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집의 연어가 바로 그러했다. 꼴 보기 싫다는 사람은 대체 뭘 먹은 걸까? 나는 연어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
고등어는 자칫 비린 맛이 나기 쉬운 생선이지만, 이 집의 고등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적절한 염장과 숙성을 거친 덕분인지, 비린 맛은 완전히 사라지고 고소한 풍미만 남았다. 겉면을 살짝 구워 훈연 향을 입힌 것도 신의 한 수였다. 겉바속촉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했다.
사시미를 음미하는 동안, 스키야키가 준비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놓이고, 그 위에 묵직한 쇠 냄비가 올려졌다. 냄비 안에는 달콤 짭짤한 간장 육수가 자작하게 담겨 있었고, 그 위로 가지런하게 정돈된 채소와 두부, 버섯, 그리고 얇게 썬 소고기가 얹어져 있었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자, 달콤 짭짤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침샘이 폭발적으로 분비되기 시작했다. 끓는 육수에 소고기를 살짝 담갔다가 건져 먹으니,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육수의 감칠맛과 소고기의 풍미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스키야키의 간이 다소 강했던 것이다. 날계란 노른자를 간장에 섞어 먹으니 짠맛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컴플레인을 할까 고민했지만, 나는 이내 과학자의 본능을 발휘하여 맹물을 냄비에 콸콸 부었다. 짜잔! 나만의 커스터마이징 스키야키가 완성된 것이다. 역시, 과학은 위대하다.
채소를 추가하고, 고기를 추가하며 나만의 스키야키 레시피를 완성해 나갔다.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다양하지 않은 점은 아쉬웠지만, 주어진 재료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맛을 낼 수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요리 실험을 진행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이자카야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일본식 인테리어는 물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까지,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앤티크한 조명은 공간에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더했다.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애틈’은 군산의 어려운 상권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믿음을 주는 곳이다. 숙성회는 서울의 유명 횟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했고, 스키야키는 다소 짰지만 나만의 레시피로 충분히 커버 가능했다. 무엇보다, 일본식 가옥의 멋스러운 분위기는 술맛을 돋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사장님의 접객이 다소 소극적이라는 점, 그리고 메뉴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점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애틈’은 군산에서 꼭 가봐야 할 맛집임에 틀림없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애틈’의 외관은,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발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오늘 ‘애틈’에서 경험한 미식의 향연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군산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애틈’을 찾을 것이다. 그곳에서 또 다른 미식 실험을 통해, 새로운 맛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다. 그때는 사시미와 함께 전통주를 음미하며, ‘애틈’의 분위기를 더욱 깊이 느껴보고 싶다.
실험 결과, 이 집은 완벽에 가까웠다.



